인자한 이웃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기는 중국 상해 교구장 김로현(金魯賢·86) 주교. 잔잔히 머금는 미소와 온화한 표정때문인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스스로 『나는 한국계』라며 한국과의 친밀함을 드러내는 김주교는 금가항 성당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한국천주교회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중 양국 교회의 교류가 보다 활성화되길 소망합니다. 특히 새로운 금가항 성당 설계부터 완공 때까지 많은 협조 바랍니다』
김주교는 『금가항 성당 철거를 막아보려고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고 아쉬워하며 『이젠 「철거」라는 문제보다 새 성당 건립에 힘을 모을 때』라고 말했다.
김주교는 『상해교구는 「철거 불가 7가지 이유」를 담은 탄원서를 상해 정부에 제출했으나 이마저도 효과가 없었다』며 이 7가지 이유중 「유서깊은 역사적 유산」과 「김대건 성인이 서품받은 곳」이라는 2가지 사실만 밝혔다.
『제 아버지 고향이 금가항이니까 제 고향이 금가항이라고 할 수 있죠. 17살에 금가항에서 나온 아버지는 가끔 저의 손을 잡고 금가항 성당을 찾곤 했습니다. 성당 마당이 진흙이라 비가 올 때면 엉망이었죠』
김주교는 김대건 성인이 사제품을 받은 역사적 의미가 깃든 곳이라 안타까워하는 한국 신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마지막 미사에 참례하며 섭섭함을 달래는 한국 신자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새 성당 건립을 위한 계획이 수립돼야 합니다. 상해시 정부로부터 이미 대지는 불하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설계도면이 만들어지고 예산이 책정돼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혁명 기간중 한때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한 김주교. 14만여명의 상해교구민을 이끌며 상해교구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김주교는 상해교구사를 말할 때 결고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 김주교 약력
△1916년 상해 출생
△1933년 예수회 입회
△1945년 사제수품
△1947~51년 로마에서 신학공부-김주교는 」요한복음의 삼위일체 해석「에 관한 논문 발표
△1952년 중국으로 귀환
△1955년 구금되면서부터 번역가로 활동
△1982년 중국 동남부 사제양성을 위한 신학교인 「서산학원」학장으로 교회에 복귀
△1985년 1월 주교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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