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무더운 여름이었고, 장소는 미국의 옥수수 밭이 광활하게 펼쳐진 아이오와주 시골의 분도회 피정의 집이었다. 당시 신학생이었던 나는 연례 피정을 하느라고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시계를 보니 지도 신부님과의 면담시간이 5분도 채 안 남아 있는게 아닌가! 면담 장소까지 달려가더라도 7~8분은 족히 걸릴 것이고, 더구나 소변이 마렵다는 것을 실감한 나는 상당히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나의 몸 동작들을 미리 그리기 시작하였다. 우선 왼손으로 화장실의 문을 열면서 동시에 오른 손으로는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왼손에 시계를 걸치고 신발을 신으면서 화장실의 변기에 접근하였다. 가능한 최대한의 속도를 내어 소변을 마치기 직전에 왼손으로는 물을 내리고 동시에 오른 손으로는 바지의 지퍼를 올리려 하는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너무 급히 소변을 보다 보니 소변이 모두 배출되기 전에 지퍼를 올린 것이고, 둘은 왼손으로 변기의 물을 내리는 순간 왼손에 대충 걸려 있던 시계가 변기에 빠지고 만 것이다. 급류에 휩쓸려서 밑으로 빠져나가는 손목 시계를 급히 잡으려 하자, 미처 못 올린 지퍼 속에서도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피정 지도 신부님께 빨리 달려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3분 정도 늦게 면담실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많은 생각과 묵상을 할 수 있었다. 조그마한 이 사건을 통해 내 정신이 깨어나게 된 것이다.
조금 전에 겪은 사건을 대략 들으신 지도 신부님의 웃음과 함께 무더운 여름의 피로감은 저 멀리로 사라짐을 느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때의 장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점이 고맙다. 더욱 소중한 것은 그 때에 묵상했던 말씀이었다. 『깨어 있어라』
우리들 대부분은 여러 모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타성에 젖어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감성은 무디어지고, 지성은 진실과 거짓을 혼동하며, 가치관을 자기중심적인 쾌락으로 만족하며, 행동 양식은 극히 이기적이면서도 양심의 가책조차 못 느끼며 무책임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가르려주신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 그런가?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윌리암 바클레이는 세 명의 마귀 이야기를 해준다. 악마 두목인 사탄은 세 마귀를 불러서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속이고 구렁텅이에 빠뜨릴 것인가를 질문하였다. 첫째 마귀는 말하기를 『나는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득할 계획입니다』. 둘째 마귀는 『본인은 지옥이 없다고 선전할 생각입니다』. 마지막 마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방법은 약간 유치합니다. 나는 하느님도 있고, 지옥도 있다고 말하지만 단지 죽을 날이 멀었다고 말할 계획입니다』. 만족한 웃음을 한 사탄은 말하기를 『내 아들아! 가서 그리하여라. 너는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으리라』.
세상에서 뒤로 미룰 수 있는 것들도 많지만 절대로 뒤로 미룰 수 없는 일도 있다. 돈 버는 일, 결혼하는 일,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는 일 등등은 매우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미룰 수도 있다.
만일에 내가 10분 후에 죽을 예정이라면 돈을 버는 일, 장가나 시집가는 일, 장례를 치르는 일 등은 급한 일이라 할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오늘밤에 재림하신다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정신 차려 깨어날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에 대비할 수 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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