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수회 신학생으로 철학과정을 마치고 실습기를 시작하면서 연례피정을 하던 때였다. 당시의 나는 수도생활의 의미와 기쁨도 잘 느끼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내적 갈등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예수회원으로서 1년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피정이기에 시작했지만 자발적으로 열심히 기도에 임하기에는 내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다.
약 일주일 동안 침묵 안에서 영적 지도 신부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열심히 기도하려했지만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는듯했다. 이제 3일 후면 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 오후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의 내 마음은 매우 무거웠고 세상 만사가 절망적인 것으로 가득한 것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느낌이 시작된 것은 아버지에 대한 나의 미움을 발견한 이후로 급격히 강해졌다. 나의 어린 시절 아버님은 나와 동생들보다는 유난히도 형님을 편애하셨다는게 나의 불만과 미움의 이유였다.
아버님에 대한 불만과 미움을 상당히 오래 동안 마음속에 억누르고 감추며 살아온 내가 그 미운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절망감에 빠진 것이었다.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진 나는 순간적으로 세상만사가 싫었고 수도생활도 포기하고 싶었다.그러나 내가 가야할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절망감과 미움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순간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망신시키고자 수도원을 떠나자!』 그러자 나의 마음은 더욱 더 고통스러웠다. 온 몸이 일시적으로 맥이 풀리고 아파왔다. 바로 그 순간 마음 속 깊이에서 주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이들에게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이상하게도 이 말씀을 들은 나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하였다. 알 수도 없는 감동과 감사의 마음이 용솟음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그분께서 죄인인 나를 이미 구원하셨다는 현실을 어쩔 수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 현실을 받아 들이자 아버님께서 그 동안 내게 해주신 모든 인내와 사랑이 마구잡이처럼 떠올랐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 속에서 나는 거듭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미운 마음의 속박을 받는 노예가 아니며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도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
대림절은 우리의 모든 세상사를 떠나서 주님을 맞이하러 떠나는 때이다. 우선 우리의 탐욕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때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는 탐욕의 굴레에 빠진 우리가 삶의 목적은 탐욕이 아니라 해방임을 깨달아야 하는 때이다.
둘째로 대림절은 미움과 증오에서 벗어나는 때이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이웃에 대한 미움과 증오의 감정들을 훌훌 털어 버리는 때인 것이다. 과연 누가 누구를 미워할 자격조차 있는가? 하고 자문자답해보자. 우리는 나름대로의 미움의 이유와 핑계를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누구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상대도 나를 미워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점도 인정해야한다.
셋째로 진정한 사랑은 고통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대림절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실감하는 때이다. 나의 아픔들 고통들 희생들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때이다. 사랑은 단순히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 그 이상이다. 주님의 사랑은 희생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이다.
마지막으로 대림절은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는 때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왜곡된 지식과 아집에 사로잡혀서 진실과 진리를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림절은 진리의 빛을 찾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편협한 사고방식들을 과감히 버리는 때이다. 탐욕과 미움과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을 예수님은 회개라고 말씀하신다.
『회개하시오. 하느님의 때, 대림절이 가까이 왔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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