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수회 수도원에 입회하게된 동기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결정적인 이유가 명확했던 것은 아니었다. 예수회에 입회하기 전까지 서울 대신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나는 예수회의 유명한 학자들처럼 되고 싶기도 했고, 복잡한 세상사를 떠나서 조용하게 도(道)를 깨우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예수회에서 살게된 깊은 뜻은 요즘에 와서야 조금씩 깨우치게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뭔가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그 당시의 마음이 나로 하여금 수도생활을 택하도록 이끈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수도자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가야하나? 이 두 가지의 기로에 서서 그 어느 것도 쉽게 선택하거나 포기하기가 나로서는 상당히 어려웠다. 며칠간 기도도 해보고 여러 사람들과 밤늦도록 대화도 해보았지만 속시원한 해답은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급기야 나의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한 수단으로 제비뽑기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제비뽑기는 나 스스로도 믿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예수회의 입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기한이 끝나기 전날 나는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내가 어차피 양단간에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면 무조건 물 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일단 선택하고 난 다음에 차차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아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예수회의 수련자가 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0시경에 잠을 잘 때까지 빈틈이 없는 하루를 지냈다. 이러한 수련 생활을 통하여 과거의 나는 서서히 사라지고 새로운 내가 태어남을 조금씩 실감하게 되었다. 이 당시에 나에게 특별히 어려웠던 것은 그동안 나 중심으로 살다가 예수님 중심으로 바꾸어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 중심의 생활에서 남을 위한 삶으로 전환하는 일은 그야말로 나의 삶의 뿌리를 옮겨서 마치 다른 나무에 접목하는 것과 비견할 수 있었다. 우선 집에서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 맛, 늦게 잠자는 버릇, 소리나게 음식을 먹던 습관, 큰 소리로 말하는 버릇, 남이 말할 때 딴전 피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만을 골라서 하는 경향, 경쟁심 등등을 포기하기란 어떤 때는 죽기보다 싫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나의 작은 포기와 희생을 통하여 나 자신이 새로워짐도 깨닫게 되었다.
오늘의 복음을 읽어보면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의 가정에서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온 인류를 위한 봉사와 희생의 삶을 선택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먼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물로 베푸는 세례와 성령으로 베푸는 세례의 차이는 무엇인가?
요한이 베푼 세례는 단순히 통회의 세례이며, 사람들이 통회를 원한다는 징표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성사다. 그러므로 이 세례는 온 생애에 걸친 전적으로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사도 바오로는 골로사이서에서 이 새 삶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2장 12절).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에게는 새 삶의 시작이지 완성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세례 성사를 그리스도의 몸(나무)에 접목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세례를 예수님의 몸 안에 뿌리를 두고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새해를 맞이하여 내 안에서 다시 태어나십시오. 그리하여 나의 삶을 본받아 새 삶을 시작하십시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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