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수회의 수련 수사일 때 서울 삼선교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에서 한달 동안 실습을 한 적이 있다. 마더 데레사수녀님의 정신에 따라서 살아가는 이 수도원은 예수회와는 달리 단순히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공동체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미사를 드린 다음 홍차 한 잔, 빵 한 두 조각, 삶은 계란 한 개로 아침을 때우고 하루종일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일한다. 점심은 보통 라면 한 그릇에 김치, 저녁은 국 한 그릇에 반찬 두 가지와 바람에 날아갈 듯한 밥 한 사발이다. 예수회 수련원에선 생선과 고기도 가끔 먹지만 부실한 식생활을 하다보니 그만 치아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치과에서 매일 치료를 받으면서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은 같은 음식을 먹고도 잘 사는데 왜 나는 영양 실조에 걸렸나? 어느 날 기도하다가 이 의문에 대하여 상당히 그럴듯한 답을 찾아냈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은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봉사하면서 사신다. 그러나 나는 상당히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서 나는 왜 가난한 이들이 이렇게 많은가? 이분은 왜 가난해졌을까? 사회나 국가는 왜 이분들에게 별 관심이 없을까? 등을 골몰히 생각하면서 봉사를 했다. 그러다보니 두뇌를 더 많이 쓰는 나에게는 영양분이 다른 수사님들보다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에 이 수도원에는 열댓분의 구걸 능력이 없는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께서 수사님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그중에 두 다리가 완전히 없으신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이분은 예전에는 구두닦이셨단다. 어느날 저녁식사 후 나와 장기를 두신 다음 할아버지께서 내게 불쑥 한 마디를 던지셨다. "변수사님, 저는 수사님이 좋습니다. 왜냐구요? 저는 평생 동안 병신으로 살아왔고 그래서 성직자가 못되었지요. 변수사님도 왼쪽 손가락 두 개가 한마디씩 없는 불구자시죠. 그런데 같은 불구자가 신부님이 되신다고 하니 저도 기뻐요. 좋은 신부님이 되세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불구자라는 점이 나의 삶에서 처음으로 축복으로 느껴졌다. 불구자라는 사실이 이웃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점도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사제 서품 준비 피정을 하는 동안에 두 다리가 없으신 할아버지의 이 말씀이 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한 불구자 할아버지께 희망의 빛과 소금이 되었듯이, 그 할아버지도 나에게 용기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주셨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서로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신학 방법론이라고 불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의 복음과 그분의 역사하심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한다. 그러나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은 단순하고 소박하게 주님의 뜻을 실천한다. 그리고 내가 만난 불구자 할아버지는 아직도 나에게 깊은 가르침을 남겨주시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제각기 주님의 섭리 안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께서 매일매일 불러주시는 나를 통해서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나 자신(眞我)이 된다는 것은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든, 내가 불구자이든,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든 상관없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주님의 도구(세상의 빛과 소금)로 쓰여짐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의 모습과 처지 안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십시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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