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지음(知音)」의 고사를 아는 이들은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우정을 부러워해본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백아와 종자기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우정으로 심금을 울려주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이존복 신부(66)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송란순 수녀.
두 사람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취근 한국순교복자수도회가 창설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갖는 이존복 신부의 작곡발표회를 송란순 수녀가 단장으로 있는 성녕세실 실내 합창단이 맡고 나서면서부터였다.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수도자의 길에 들어선 이존복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67년 한국복자수녀회 지도신부를 맡게 되면서 비롯된 두 사람의 우정은 음악을 매개로 싹트기 시작했다. 송수녀가 숙명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77년 로마교황청 음대로 유학가기 전까지 서로를 끌어주며 키워온 음악세계는 10여년을 이어지며 지음의 관계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신부님은 오르간의 귀재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아름다운 곡들을 계속 들을 수 있을 줄로만 알고 녹음을 안해둔 게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신부를 회고하는 송수녀의 얼굴에서는 그의 말에서보다 더 큰 아쉬움이 묻어났다. 송수녀가 로마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이신부는 83년부터 뜻하지 않은 중풍이라는 병마와 싸우며 투병생활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기억마저 단절돼 있던 이 신부는 다른 이는 못알아 봐도 송수녀만은 용케 기억해냈다고 한다. 최근 이신부가 투병에 들어가기 전까지 작곡했던 작품 160여곡이 그의 가족들에 의해 발굴되자 이 일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이가 송수녀였다. 기억을 되찾은 이신부는 올 봄 동생에게 송수녀의 이름을 써주며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하는 송수녀에게 자신의 곡을 맡길 것을 신신당부했다.
『이 신부님의 곡은 50년대부터 병으로 쓰러지기 전인 80년대까지 쓰여진 곡들이지만 지금 들어도 호소력이 있어 감동적입니다. 이신부님의 곡을 다시 들을 수 있게 돼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이 기쁨으로 송수녀는 이신부의 작곡집 정리와 발표회를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신부의 곡은 10월 26일 작곡발표회 때 모습을 드러낸 20곡을 시작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던 것이다.
수십년을 묻혀왔던 자신의 곡 발표회가 있던 날 이존복 신부는 발표회장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으로 곡이 발표되는 것조차 꺼려했던 이신부의 겸손함을 아는 이들은 그의 정신이 녹아든 곡을 들으며 작곡자를 향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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