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일 무렵 나는 서울의 장위동에 사시던 큰 이모 집에서 숙식하고 있었다. 초여름 어느 날 저녁 나는 집 근처의 노점에서 약 60세 정도의 건강해 보이는 할머니로부터 50원 짜리 껌 한 통을 샀다. 집에 돌아와 주머니속의 거스름돈을 세어 보니 거의 만원 가까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천원 짜리로 껌을 구입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나는 잠시 잘못 계산된 돈을 돌려드려야 하나,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야 하나를 놓고 한동안 망설였다. 결국 가난한 행상 할머니에게는 큰 돈이니 돌려드려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길가 노점에 나갔다. 나는 당당하게 그 할머니에게 "할머니 제가 한 시간 전쯤에 여기서 껌 한 통을 구입했어요. 저는 천원을 드렸는데 할머니는 9950원을 거스름으로 주셨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반응이 내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할머니는 "학생! 날 놀리는거야! 난 학생에게 950원을 거스름으로 주었어" 라고 약간 화를 내셨다.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다시 생각해 보고 내 기억이 맞다고 확신하였다. 한참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낸 나는 선행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그 할머니의 노점에 다시 갔다. 내가 돈을 내밀면서 "할머니, 이 돈 9000원은 분명히 할머니가 착오로 저에게 거스름으로 잘못 주신 돈입니다" 라고 크게 말하자, 할머니는 "누굴 바보로 아는거야! 제발 나를 귀찮게 하지마" 라고 화를 내시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나는, "할머니! 할머니가 오늘 번 돈을 잘 계산해보시면 제 말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잖아요"하고 항의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야! 빨리 꺼져! 그 돈 몇 푼으로 나를 깔보지마!"라고 고함을 지르셨다.
나는 잠시 나의 혼란스러운 느낌들과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뭐가 문제인지를 알 수 없었다. 나로서는 지금도 그 할머니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오늘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내가 반성해야 할 몇 가지 문제점들이 떠올랐다.
첫째로 나는 약간 오만한 태도로 그 할머니를 대했던 것 같다. 나는 마치 불쌍하고 가난한 할머니에게 커다란 자비나 베푸는 듯한 자세로 거스름돈을 내밀었던 기억이 난다. 둘째로 나는 할머니의 착오나 실수를 따지는 태도로 일종의 다툼을 일으킨 것 같다. 나는 나의 기억이 옳고, 내가 거스름돈을 돌려드리는 것도 옳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그 할머니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가능성이 많다.
마지막으로 나는 돈을 돌려준다는 사실에 주로 중점을 두었지만 그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왜 할머니가 돈을 돌려주려는 나에게 화를 내셨는지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그 분의 심정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법을 따지고, 나와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가리려하고 있다. 빈번히 일어나는 자동차의 접촉 사고들에서, 각종 부정과 비리 사건들에서, 지루한 여당과 야당의 다툼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갈등 속에서, 부부들의 말 다툼에서 우리는 법을 따지고 상대방의 잘 잘못을 가리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거나 우리를 화합으로 인도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법을 따지고 잘 잘못을 가리기 전에 먼저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고, 먼저 상대를 이해해 주고,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라". 그렇게 하려면 문자의 법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마음의 법, 즉 복음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한다. 그리하면 우리 사이에 참 평화와 진정한 사랑이 스며들게 된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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