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미국의 남부 지방 앨라배마에 7살 된 헬렌 켈러(Helen Keller)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생후 6개월 무렵 심한 병을 앓고 그 후유증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듣지 못하자 말도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녀는 마치 야생 동물처럼 사람들과 의사 소통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헬렌 켈러는 죽기 전에 이미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정규 대학을 우수생으로 졸업했고, 많은 책들을 출판했으며, 미국 백악관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손님이 되었으며, 전세계의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헬렌이 중복장애인이면서도 이렇게 놀라운 업적을 일구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살 된 애니 설리번이라는 개인교사의 숨은 공로와 노력이 있었다. 헬렌이 저술한 좥내 생애 이야기좦라는 책에서 자신이 어떻게 중복장애를 뛰어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 묘사된 그녀의 체험을 필자가 간략하게 요약하겠다.
1887년 어느 화창한 봄날 헬렌은 그녀의 선생님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갔다.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선생님이 가져온 모자를 쓴 헬렌은 지붕이 있는 우물가에 도달했다. 선생님은 헬렌의 한쪽 손을 흐르는 물속으로 놓고는 다른 쪽의 손바닥에다 천천히 '물' W - A - T - E - R 라고 손가락으로 그려주었다.
헬렌은 갑자기 선생님이 한쪽 손바닥에 그려준 'WATER(물)' 라는 글자가 또 다른 손에 느껴지는 시원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흘러내리는 어떤 물체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헬렌의 몸과 마음은 황홀해지고 뭔가 번쩍하는 듯한 섬광을 느꼈다. 그녀는 빛과, 희망과, 기쁨 속에서 살아있는 말(언어)을 깨우친 것이다.
헬렌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그동안 너무나도 궁금했던 모든 물체들의 이름을 묻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떤 물체를 만지면 한쪽 손바닥에는 어김없이 그 이름이 선생님의 손가락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무, 바-위, 신-발, 모-자 등등. 그녀가 끝없이 만지는 물체들은 이제 그녀의 영혼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고(이름 지워지고) 있었다. 이 우물가의 체험은 헬렌의 삶을 영원히 그리고 새롭게 바꾸어 주었다.
헬렌 켈러의 이야기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비슷하다. 장소가 우물가라는 점,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물을 매개로 하여 대화와 깨달음이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스승의 메시지가 제자의 삶을 영원히 바꾸었다는 점이 유사하다.
초대 그리스도교회 신자들은 세례성사를 사마리아 여인에게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시켜서 이해했다. 그들은 물가에 모여서 세례를 받았고, 여기서 물은 옛 죄를 씻어버리는 도구이며 영원한 새로운 삶(부활)을 상징했다. 우리 예비신자들도 부활 전야 미사 때에 성수대에 모여서 세례를 받는다. 여기서 예비신자들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초대받는다. 헬렌 켈러와 사마리아 여인이 체험한 것처럼 세례자들도 스승의 초대를 받아 그분의 말씀(진리)을 깨달아 새롭고 영원한 삶(사랑의 나라)으로 인도되어야 한다.
사순절은 우리가 어두움과 무지와 악습들에서 해방되도록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물로 씻어내는 때이며, 부활절은 이 생명의 물로 새로 태어나는 때이다. 세례를 받은 우리 신자들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의 지난 일들을 다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가서 봅시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한 4, 29)라고 이웃에게 달려가서 복음을 선포해보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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