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도에 가톨릭 신앙생활 연구소에서 한국 천주교 평신도의 신앙생활 실태를 종합조사 한 적이 있었다. 그 중에서 부활에 대해 전혀 혹은 별로 믿지 못하겠다고 한 응답자가 약 30%에 이른다는 놀라운 사실을 읽은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걱정스러운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부활은 인간의 생명이 연장되거나 죽은 후 소생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이 세상의 삶과는 전적으로 다른 영원한 하느님 생명에로 드높임을 받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영원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 안에서의 삶인 것이다.
이번 주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 사화 중에서 빈 무덤의 이야기이다. 무덤을 찾아 간 제자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잘 그려지고 있다. 다른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죽으신 후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극진히 장례를 치른다. 그 때 큰 돌을 굴려다가 무덤을 막았다 (마태 28, 60). 또한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빌라도에게 청하여 무덤에 경비병까지 세우고 무덤을 봉인하게 한다(마태 28, 62-66).
혹시라도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다가 숨겨놓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소문을 내면 시끄러워지니 미연에 방지했던 것 같다. 누구도 시신에 손을 대지 못하게 철통같이 경비를 하게 된 사건이 오히려 예수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제공한다. 아무리 인간들이 지혜와 힘으로 무덤을 막고 지켰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사흘동안 무덤을 방문하는 전통적 관습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죽으면 바로 영혼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사흘동안은 영혼이 시체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는 전통적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한 첫 사람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였다. 성서에서 보면 그녀는 창녀로서 일곱 귀신이 들린 여자인데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새롭게 태어난 인물이다. 예수님도 그녀를 몹시 사랑하셨던 것 같다. 그녀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실 때 가까이 있었고 장례를 지낼 때도 그 현장에서 모든 것을 낱낱이 지켜본 인물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제자들이 도망간 자리를 지키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슬픔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예수님이 죽은 후에도 그칠 줄을 몰랐다. 안식일 다음날 새벽 일찍 예수님의 무덤을 찾는다. 그러나 그녀가 발견한 것은 텅빈 무덤이었다. 그녀는 당황했고 황급히 베드로에게 알린다. 곧이어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무덤으로 달려가보니 역시 빈 무덤이었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이고 기본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어버린다(1 고린 15, 17). 그러나 부활은 믿음 없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다. 인간적인 지혜나 두뇌로는 아무리 따져보아도 부활을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부활은 초자연적인 하느님 계시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활에 대한 믿음은 특별한 은총이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신비의 은총이다.
빈 무덤에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 물론 빈 무덤이 예수 부활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실제로 체험했던 것이다. 만약 우리도 진정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한 생각이나 판단, 의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가끔 빈 무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황과 허탈감, 좌절 등 빈 무덤의 체험은 오히려 더 큰 믿음으로 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믿음의 성숙은 자기수양이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은 하느님의 계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수용성에 있다. 그래서 믿음은 신비요 은총이다. 부활사건은 논리나 철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활은 믿음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초자연적 신비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현(體現)하고 증거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활을 굳건히 믿고 부활의 삶을 철저히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깨달아야 하겠다. 이번 한주간, 빈 무덤에서 허탈하고 당황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굳건히 믿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 지금까지 복음생각을 집필해 주신 변희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부터는 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허영엽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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