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 되면 생각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전에 사목했던 성당에서 늘 봉성체를 모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부활절을 몇 일 앞둔 날 병자성사를 받으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부님!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처럼 부활을 하면 허리가 아프지 않나요?" 그때 나는 십년넘게 허리병을 앓으신 그 할머니를 바라보며 그냥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고통 중에서도 마치 어린이처럼 환히 웃으셨다. 그분은 그날 내가 성당에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부활절이 되면 어린이같이 순수한 믿음을 지니셨던 그 할머니의 미소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진정한 믿음은 바로 그 할머니의 믿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복음을 살펴보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이 두려움과 근심에 싸여 문을 닫고 모여있었다. 유다인들의 박해가 두려워 모여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시면서 인사를 하셨다. 문이 닫혀 있는데도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은 몸이 더 이상 물질 세계의 속박에 있지 않은 영적인 몸이라는 것이다(1필립 15, 44). 예수의 발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부활의 확신을 갖지 못했다. 혹시 유령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은 당신의 옆구리와 손을 보여주신다. 양손과 옆구리에는 구멍의 흔적이 있었다. 얼마전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할 때 받으신 상처자국인 것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유령이나 환시가 아닌 실제적인 몸이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죽으셨던 스승 예수님을 다시 만난 제자들의 기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성령을 불어넣어 주신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난 제자들의 강력한 체험은 당연히 기쁜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그 전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의 삶이었다. 이제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당당하게 주님의 부활 사실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의 증언은 참되고 믿을 만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 전과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전 생애를 통해 주님의 부활, 즉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엔 토마스 사도가 없었다. 후에 이 소식을 접한 토마스는 부활을 부인하며 펄쩍 뛰었다. "나는 내 눈으로 보지 않고 내 손으로 못자국을 만져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며 완강히 부인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여드레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그 때 비로소 토마스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결코 토마스를 꾸짖거나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의 불신앙을 애태우시면서 의혹을 풀어주시려고 노력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부모님이 아직 철이 덜 든 자녀를 대하는 마음과도 같이 사랑과 자비가 듬뿍 담겨있었다.
우리는 보통 보고, 듣고, 만지는 등 감각을 통해 사건과 사물을 접하게 된다. 특히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보는 것을 가장 확실한 증거로 삼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보는 것은 부정확한 때가 많다. 보는 시각 능력만 하더라도 인간의 그것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우리는 세상의 것을 다 볼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만을 믿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모순이다.
부활은 그것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을 통해 전해진 사실이다. 부활을 증언한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부활을 증언했다. 물론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불어넣어주셨던 그 성령이다. 성령께서 부활을 선포하게 하고 부활을 믿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 안에 성령이 역사(役事)하신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부활을 직접 목격했던 제자들도 쉽게 믿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겸손되이 주님께 청해야 할 것이다. 주님! 우리에게도 그 옛날 제자들에게 불어넣어 주셨던 성령을 다시 내려주십시오. 아멘.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