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 1장은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사화를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 날을 서방교회에서는 6세기부터 지내오고 있는데, 당시 로마 전례력은 이 축일을 대림 제3주일에 성탄을 준비하는 의미에서 기억하였던 것이다.
독립된 축일을 지내기 시작한 것은 성 보나벤뚜라가 총장이던 1263년에, 이탈리아 피사의 프란치스코회 총회에서 7월 2일을 수도회 차원에서 지내게 결정하였다. 그후 프라하의 대주교이며 총리를 동시에 지낸 요한 옌슈타인(1348~ 1400)은 1386년에 있었던 교구 시노두스에서 4월 28일에 이 축일을 지내게 명하였으며 다른 교구에도 이를 권장하였고, 더 나아가 교황 우르바노 6세에게도 이날을 축일로 지정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당시의 교회는 교황이 두 명이 있었던 극심한 분리 상태에 있었으나 상황이 매듭지어지던 1338년 9월에 교황께서는 이 축일을 제정하기 위한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새 교황 보니파시오 9세께서는 1390년에, 분열된 교회가 마치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의 어머니인 엘리사벳과 신약의 창시자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서로 만나듯이 서로 일치하기를 기도하면서 7월 2일을 기념일로 이 축일의 제정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 축일은 후대 교황들이 가끔은 의미없게 여기기도하고 가끔은 무시하기도 하는 위기에 처한 경우도 있었다.
1441년의 바실레아 공의회에서 이 축일을 포함하는 성무일도서를 새로 만들고, 니콜로 5세 교황이 1451년에 각 지역 교회에서 이 축일을 의무화하도록 명하였으며, 식스토 4세 교황이 성모 방문 성당을 건립하는 등의 노력으로 전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후 클레멘스 8세 교황이 이 축일을 대축일로 선포하였으나 비오 9세 교황께서 1849년에 다시 축일로 지내는 것이 1969년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 6세 교황이 이룩하신 전례력 개혁 때에 다시 기념일이 되었으며, 날짜도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전이며 성모성월에 있기를 바라는 염원에 따라 5월 31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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