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연에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일까? 논리 정연한 사유가 바탕이 되든, 막연한 동경이든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적인 것이 아닐까? 한국문단의 원로시인 홍윤숙 (데레사)씨의 열두번째 시집 '조선의 꽃'을 읽으면서 새삼 자연의 아름다움과 푸근함, 나아가 언제나 변함없는 항심(恒心) 앞에서 작지만 따뜻한 경외심마저 밀려옴을 느낀다.
바라보면 살며시 눈가에 지는 주름 /
웃음짓다 부끄러워 고개 돌리는 /
이순의 나이에도 솜털 보르르 /
가슴 두근거리며 볼 붉히고 /
수줍은 눈길 입술 꼭 다물고 / …
〈할미꽃〉중에서
나이 60 넘어 인간사 모든 일에 초연해질법한데도 자연 앞에 서면 가슴 두근거리며 볼 붉힐 일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잊고 살았던 추억이 녹아 있고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추억은 애잔하고 아름다움은 안타깝다. 돌이킬 수 없는 인생 때문일까?
… // 추억이 그처럼 아픈 가시임을 / 몰랐었다
〈강아지풀〉중에서
… / 생각하면 입 속에 신물 고여오는 / 회한뿐이다
〈싱아〉중에서
누군가 추억은 아름답게 채색된다고 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아픈 가시'로 다가오고, 미각에 있어 젊음을 상징하는 상큼한 맛은 좥회한좦으로 다가올 뿐이다. 무엇이 이토록 노 시인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왜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끝나지 않고 아픔으로 남는 것일까? 세월 때문인가? 문학에의 열정이 아직도 식지 않아서일까?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애절함인가?
"1998년, 참으로 엄청난 시련 앞에 우리는 서게 되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들을 견디면서 내 인생 이렇게 마감하는가 싶은 참담함에 비감해지기도 하고 어디론가 도망쳐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생각들로 피해 간 곳이 자연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시인에게도 지난 한 해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사적으로 힘들었던 해로 기억된다. "하느님은 너무 크고, 멀고, 보이지 않고, 응답이 없으셨다"는 표현은 힘들었던 정도를 짐작케 한다. 결국 도망치는 심정으로 피해간 곳이 자연. 자구책으로 매달린 자연에서 지난 여름 가을 30여 편의 작품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난 한 해는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했다"는 시인은 새삼 시의 즐거움이 이런 것인가를 깨달으면서 작은 풀, 꽃들이 풀어내는 소소한 숨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슴 설레고 따뜻해지기도 했다. 자연 속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고, 투정에 대한 그 분의 응답이라 생각하니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었다.
'미숙하고 치졸해지는 언어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대로 순한 감성의 어린이가 되어 보는 즐거움에 날을 지샜다'고는 하지만 한국 여성의 애달픈 삶, 꽃들이 담고있는 역사 의식, 꽃을 통해 보는 시인의 성장기 등이 전편에 걸쳐 흐르고 있음은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생각거리를 만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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