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희년은 구약성서에서 지적하는 하느님의 무상성 혹은 좥은총의 지평좦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예수 안에서 「악한 자들에게나 선한 자들에게나 해가 솟아나게 하시며」 한결같이 처신하도록 명하시는 하느님을 제시하면서 거저 주는 은총의 의미를 훨씬 더 심화시킨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두 개의 비유가 이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첫째는 포도밭 일꾼의 비유이다. 새벽에 일을 시작한 사람들과 오후 다섯시쯤 일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똑같은 품삯을 지불하는 「주인」에게서 우리는 상식을 벗어나는 듯한 논리, 일정한 규칙이 없는 듯한 선한 모습을 보게 된다.
『맨 나중에 온 이들은 겨우 한 시간 일했는데도 종일 노고와 무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이 다루시는 겁니까?』라고 투덜거리며 주인의 불의를 고발하는 자들에게 주인은 냉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불의한 일을 하고 있지 않소.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에게도 당신과 같이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선하다고 해서 당신 눈길이 사나워지는 거요? (공동번역에서는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라고 옮긴다) 이와 같이 말째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말째가 될 것입니다』(마태 20, 13~16).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깊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거저 줌」의 정의를 보게 된다. 즉 이 비유에서는 「행위」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간적인 질서가 파괴되고, 주는 편에서의 자비로운 마음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진다.
「거저 줌」의 논리가 더욱 깊이 있게 발전된 또 하나의 신약성서 본문은 「무자비한 종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측은히 여기는 주인이 그의 한 종에게 1만 달란트(천문학적인 수치에 이르는 수십 억의 돈이다)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종은 그에게 백 데나리온(우리 돈으로 100원이 채 안 된다)을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고 빚을 갚을 때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무자비한 그 종은 결국 주인으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는다. 『악한 종아, 네가 간청하기에 나는 네 빚을 모두 삭쳐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겨야 할 줄 몰랐더냐?』(마태 18,32-33).
이 이야기의 결론은 매우 극적이다. 『주인은 크게 화를 내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대들이 교우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그대들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입니다』(마태 18, 34~35).
이 비유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자비한 종에게 내린 주인의 징벌이 아니다. 이 비유가 뜻하는 바는 측은한 마음으로 사면을 받은 자는 그 역시 다른 사람에게 측은한 마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겨야 할 줄 몰랐더냐?』).
하느님을 본받아 이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받기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희년에서 베푸는 좥은사좦가 지니고 있는 신학적 의미는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움이다. 좥은사좦가 지닌 신학적 의미는 하느님의 조건 없는 용서를 확언하는 것이고, 죄인인 인간은 이 용서로 인해 과거의 죄에 얽매이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그의 하느님과의 계약 관계에로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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