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하감독님께서 멋있게 설치한 무대로 등장했다가 1막이 끝나기도 전에 퇴장당해 버린 두 남녀 주연 배우들 이야기를 하였다.
오늘은 뱀에게 저주를 내리시면서 동시에 에덴으로의 복귀(?) 즉 구원을 약속하시는 「첫번 복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3, 15).
최초의 인간의 순간의 선택이 이렇게 결정적인 불행의 시작이 될줄이야…. 애석해하는 인류에게 또다른 방법으로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는 말씀이 뱀에게 내리는 저주안에 들어 있다. 그 말씀을 「첫번 복음」 또는 「원복음(元福音)」이라고 한다. 범죄한 인류에게 내려진 첫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여자의 후손」이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해석하였다. 「발꿈치를 물려고 할 것이다」 이말은 당시 전쟁풍습을 알면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다. 전쟁에서 진 왕은 승리한 왕 앞에 꿇어 엎드려서 땅을 핥아야했다. 흙을 핥는 동안 승전한 왕은 그 머리 위에 발을 얹어놓았는데 이것이 항복의 표시였다.
그때에 최후의 수단으로 발꿈치를 물릴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싸움을 할 것이며 동시에 물릴 위험성을 말하는 것이다. 여자와 그 후손들은 대대로 이렇게 선과 악의 전쟁을 반복할 것이다. 마침내 한 후손이 일어나 선과 악의 투쟁에서 승리를 가져올 것이며 영원히 악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예고 말씀이다.
『그 사람이 죽었을때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이들을 거북하게 했고 도전을 불러일으켰던 그 사람은 결정적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고 모든게 끝장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습니다. 한번도 죄가 뚫고 들어가지 못한 그 사람의 마음 밑바닥까지 자비하신 전능자께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때부터 그 사람은 온갖 죄의 폭력과 악순환을 자기에게서 멈추게 한 것입니다. 그는 온갖 몰이해와 수난 속에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다른 이들에게 죄를 죄로 되갚지도 않았을뿐더러 드디어는 사람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억겁을 두고 돌고 돌았을 죄와 미움의 폭력이 처음으로 세상에서 정복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5장에서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원형이라고 하면서 아담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악과 죽음이 들어온데 비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풍성한 은총을 입게된다고 말한다. 아담으로 말미암은 죄과 불행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총과 영원한 생명으로 상쇄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신 다음에도 악과의 투쟁은 사라지지 않았다. 악을 이기고 승리하리라는 희망이 생김으로써 오히려 그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사실상 악을 쳐이기셨다. 우리 모두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고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타고 났다면 또한 우리가 모두 죄와 죽음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어 새 인류의 역사에 가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그리스도의 구원은총을 기뻐한 나머지 아담의 죄를 좥복된 죄좦라고 말한 교부가 바로 아우구스띠누스 성인이다. 그리고 그 말은 매년 부활절 성 토요일 밤에 아름다운 부활찬송가로 불려진다.
『이 밤은, 죽음의 사슬 끊으신 그리스도, 무덤의 승리자로 부활하신 밤, 구원될 희망 없었다면 태어나 무엇하리요. 오 기묘하도다.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 오 헤아릴 길 없는 주님 사랑, 종을 구원하시려 아들을 넘겨주신 사랑! 참으로 필요했네. 아담이 지은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오 복된 죄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이것이 바로 전화위복이라는 것이리라. 사실 아우구스띠누스는 이단교리에 빠져 아담의 죄의 결과를 몸소 체험하기도 했고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되면서 구원에 대한 참으로 올바르고도 깊은 통찰을 하게 된다.
옆에 실린 그림은 성모 마리아가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말씀을 듣는 장면이다. 그 옆에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참담한 운명이 되어 퇴장당하고 있는 그림이 함께 실려 있다. 화가는 인류 최초의 범죄로 낙원을 잃음과 동시에 그때 약속된 첫 복음이 성모 마리아에게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느님은 무한히 선하신 분이시다. 착한 아버지가 자녀의 불행을 어찌 가만히 보고 계실 수가 있겠는가. 비록 애초의 각본은 쓸모없게 되었지만 유능한 하감독님께서는 순발력있는 연출을 시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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