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 백의 작품 에덴의 동쪽 영화는 성서에서의 카인과 아벨을 현대적 인물로 설정하였다. 영화에서는 형이 온순한 아벨이고 동생이 카인과 같은 인물이었는데 10대의 우상인 제임스 딘이 그 역을 맡았다.
그 작품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에덴의 동쪽에서 시작한 인류의 죄의 역사는 지금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특히 형제간 미움과 질투를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거친 땅을 갈며 고생하는 부부에게 두 아들이 태어나서 그래도 부부는 삶의 위안과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카인과 아벨은 각각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하느님께 제사드리는 때가 되어 카인은 곡식을 예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을 제물로 드렸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벨의 것은 받아들이시고 카인과 그의 예물은 반기시지 않았다.
카인은 편파적인 하느님의 처사에 몹시 화가 났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왜 카인의 제물을 거절하셨는지 전혀 설명이 없다. 그러나 농경문화를 이루며 부유한 경제를 누렸던 이웃 국가 가나안 민족에 비하여 목축업을 하며 항상 열세를 면치 못했던 민족의 조상, 그러나 하느님 선민이라는 우월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음을 읽을 수 있다.
어쨋든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미움과 질투, 폭력 문제이다. 카인은 하느님이 왜 내것을 안받으시는가를 생각해 보기 이전에 무조건 판단하고 화부터 냈다. 그런데 성서에서의 인류구원의 역사는 곧 선택의 역사라는 것을 앞으로도 거듭 되풀이되는 사건 속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돌보고 싶은 자는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고 싶은 자는 가엾이 여긴다(출애 33, 19). 하느님께서 한 쪽을 선택했다해서 다른 쪽은 버리셨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느님께서 필요에 의해 한쪽을 선택하는 경우 다른 한쪽에 대해서도 충분히 그에 맞는 선의를 보여주시는 법이다.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느냐 하느님은 카인에게 물으시고 죄가 네 문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니 너는 그 죄에 굴레를 씌워야 한다는 말씀으로 카인에게 폭력을 쓰지 말 것을 경고하셨으나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한 카인은 아벨을 들로 꾀어내어 살해한다.
분노는 이성을 잃게 하고 흥분하게 하기 때문에 사건의 이치를 알아듣기 어렵게 만든다. 옛 사막의 한 수도승은 「분노의 악령이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는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카인은 존엄한 인간성을 스스로 파괴당한다. 동생을 살해한 카인은 아담처럼 숨고 싶었을 것이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는 하느님의 질문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 자신의 분수화 한계와 책임을 묻는 말씀이었지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형제에 대한, 이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추궁하는 말씀이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고 있다 이 말은 억울한 이가 법적인 보호를 요청한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카인은 억울한 이를 보호하시는 하느님께 정당한 벌을 받는다. 너는 저주를 받은 몸이니, 땅에서 물러나야 한다. 농부가 땅을 뺏길 때는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잃는 것이다. 카인이 벌이 너무 무거워서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벌을 내리시면서도 또한 보호도 약속하신다. 누가 카인을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그에게 표를 찍어주셨던 것이다. 이것은 폭력의 악순환을, 피의 복수를 막기 위한 조처이다.
카인이 살인자이지만 똑같이 살해당함을 하느님은 원치 않으신다. 이런 원리로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카인이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이지 카인도 아벨처럼 죽어야 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최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인물이 검거되었는데 사회 분위기는 신에 대한 동정, 연민이 더 우세한 것 같다. 신이 분노하고 있는 법의 불평등성과 공직사회와 기득권층의 더 큰 비리, 부정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또 반가운 일은 조세형씨를 변론했던 엄상익 변호사가 신의 변호를 맡게 된 일이다.
실체적 진실이 가려져 있다면 진실을 밝히고 당사자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변호사의 임무다. 중죄인이라도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다 신의 변호사 선임에는 조세형씨가 큰 역할을 했다는데 현재 조씨는 열렬한 크리스찬 목사가 되었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결국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확산된 미움과 질투, 그리고 폭력이 주제이다. 이것이 인류 죄악의 역사이고 인간 사회안에 되풀이되는 죄의 유형일 것이다. 중죄인을 중벌로 다스리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보여준 조씨의 사례는 참으로 희망스러운 일이다. 부디 신의 사건도 그렇게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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