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다룬 바벨탑 이야기까지를 창세기의 「태고사」, 말하자면 선사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다룬 세상창조와 인류의 기원, 아담의 범죄, 카인의 범죄를 보면서 인종이 퍼져나감과 동시에 죄악도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많아지고 심해졌음을 실감하였다.
그러나 한편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족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당신의 구원계획을 이루시고자 당신의 마음에 드시는 이를 선택하시고 그 가문이 이뤄지도록 하신다는 사실이다.
원조들의 죄와 노아때의 죄의 세상을 벌하시면서도 인간의 멸망이나 멸종으로 인간 세상을 끝장내지 않으시고 그때마다 구원의 싹을 남겨두셨다. 이번 차례부터 보게 될 성조사(창세 12장~50장)는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과 열두 아들들의 이야기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의 이야기이며 본격적인 이스라엘 민족사가 시작된다. 창세기 1~11장까지의 태고사가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시기였다면 이제 아브라함부터는 다시 하느님께로 접근하는 시기로 들어선 것이다.
창세기 11장 끝부분에 아브라함의 족보가 나오고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원래 우르지방, 그러니까 바빌론 지역에서 살다가 하란으로 이사와서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방인의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다신론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옛적에 너희 조상들은 다른 신들을 섬겼었다』(여호 24, 2)
이제 메소포타미아 상류지역 하란에서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야훼께서 부르신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12, 1~3)
다신 숭배지역에 살던 아브라함은 아직 유일신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모르는 어떤 분이 그에게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축복을 약속하신다. 아브라함은 분부대로 길을 떠난 것으로 보아 하느님의 명령에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신비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란에서 재산을 모았다고 했는데 자기와 집안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모든 것을 떠나야 했다. 당장 여기를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가야 하는 대단한 모험을 감행한다. 18년전에 나의 큰오라버니가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셨는데 그때 오라버니는 50세가 넘어있었고 올망졸망 어린 자녀들을 거느리고 아무 연고자도 없는 낯선 땅으로 떠나던 뒷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삶에 익숙한 고장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미지의 땅에 대한 두려움,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불안을 안고서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의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었기에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야훼께서 분부하신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함께 떠났다. 하란을 떠날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칠십오세였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재산과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에 이르렀다』(12, 4~5)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놀라거나 난처해하지도 않았다. 아브라함은 말이 없다. 길을 떠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알아듣지도 못한채 그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이것이 아브라함의 놀라운 신앙이다.
남미로 간 오라버니는 스스로 계획을 세웠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을 갖고서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떠남이 오로지 하느님편에서의 제안이었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다 파악할 수 없는채로 응답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것. 이것이 차이점이고 신앙의 어두움이다.
아브라함이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서 종들과 가축떼를 거느리고 하느님이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이르러보니 이미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마음대로 땅을 차지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 7)는 하느님의 말씀은 얼마나 황당하고 생소하게 들렸겠는가. 더군다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본래 잉태를 못하는 여자인데다가 나이도 지났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했다는 그것이 아브라함의 어두운 신앙의 모험이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실상 하느님의 약속은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모든 신앙인들이 체험하고 감수해야하는 신앙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이런 신앙의 어두움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들었던 좬떠나라좭는 명령은 매일 우리 삶안에 되풀이되는 말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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