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완서 (엘리사벳)씨의 일곱 번째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창작과비평사)이 모처럼 출판계에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발간 한 달여 만에 5만여부가 판매되면서 순수 문학작품으로는 드물게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기, 소설집 '한 말씀만 하소서' 발간 후 근 5년만에 낸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 '너무도 쓸쓸한 당신' 외에 '마른 꽃' '환각의 나비' 등 9편이 실려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여기 수록된 단편들은 젊은이들이 보기엔 무슨 맛으로 살까 싶은 늙은이들 얘기가 대부분이다"고 밝혔듯이 초로의 부부, 과부와 홀아비,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딸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나 한풀이를 담은 것은 아니다. 작가 스스로도 "교정 볼 때 즐기며 읽었다. 간간이 미소짓는 여유도 가졌다"고 밝혔듯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의 연륜과 뛰어난 글 솜씨가 노년의 심리와 정서를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늙은이 너무 불쌍해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고 말해주고 싶어 쓴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게 강변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사는 것을 맛있어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우러난 소리 같아…"라고 말하는 저자는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노인들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감싸안으면서 그들에게도 나름의 삶과 사는 맛이 있음을 강변하고 있다.
표제작 '너무도 쓸쓸한 당신'은 한 초로의 부인이 아들 졸업식장에서 안사돈에게 은근한 모욕을 당하고 아들을 빼앗긴 상실감에 평소 멋없고 비굴한 인간이라고 경멸해왔던 남편, 그래서 오랫동안 떨어져 산 남편의 소매를 끌고 무작정 졸업식장을 벗어난다. 부인은 뜻하지 않은 여행을 통해 남편을 이해하게 되고, 또한 가부장의 외로운 책무를 다하려는 안쓰러운 남편에게 연민의 정까지 갖게 된다.
그런 가운데 우리 사회의 결혼 풍속과 문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가속되고 있는 요즘, 표면적인 양상은 달라도 많은 부부들이 안고 살아가고 있는 문제에 대한 경종일 수도 있다.
'마른 꽃'은 회갑을 앞둔 과부가 친정 조카 결혼식에 다녀오다 만난 멋쟁이 홀아비 조박사와 연애하는 이야기. 눈치챈 딸이 처음에는 엄마의 연애를 반대하다 나중에는 재혼하라고 성화하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평론가 염무웅 교수가 "전설적인 아름다움 이상의 거의 신화적인 광채에 둘러싸인 뛰어난 소설"이라고 격찬한 '환각의 나비'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찾는 딸의 행적을 통해 이 시대 노인에게 평화와 안식은 존재하지 않음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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