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들은 한 신자분의 신앙체험이다. 『저는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교회에 오는 모든 신자들이 마치 천사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얼마있다가 잘 알고 지내던 한 자매가 갑자기 나를 찾아와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나는 순수한 형제적 사랑으로 그 사람에게 아주 큰 돈을 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안있어 그 자매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나는 너무 큰 배신감을 느꼈고, 더 비참한 것은 같은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일년정도를 병상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게되었는지 그 곳 성당의 신자들이 환자방문을 왔습니다. 나는 냉담하게 그들을 배척했습니다. 그런데도 연세가 지긋하신 신자 몇분이 계속 저를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함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 한구석도 미움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중에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를 찾아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신자로부터 받은 상처를 다른 신자들을 통해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늘 함께 계시는 주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립니다』
잘못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역할
오늘 복음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부터 오늘까지 가능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는 교회론이 중요하게 나타나는 복음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잘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바로 잡아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지상의 교회는 아직 완성된 공동체가 아니다. 거룩한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요소를 그대로 담고 있는 미성숙하고, 단점을 보유하고 있는 공동체이다. 교회도 인간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잘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교회는 사랑과 믿음안에서 잘못한 형제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선은 잘못한 형제가 부끄럽지 않도록 둘이서 이야기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충고를 듣지 않을 때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을 동원하여 견책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않으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단호하게 가르친다. 이것은 교회의 충고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올바른 길에 들어서지 않는 이들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즉 많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회개하지 않는 이들은 그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교회의 중요한 특성은 공동체에 있다. 즉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친교를 드러내는 것이다. 죄인들의 회개와 충고를 위한 기도는 초대 공동체의 의무였다. 기도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
초기 교회 공동체는 성전 뿐 아니라 신자집에서도 기도를 함께 바쳤다. 기도는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즉 교회가 인간적인 모임이 아니라 신앙의 모임의 성격을 띠는 것은 함께 기도하는 데 있었다. 교회가 참다운 공동체로서 일치와 친교, 그리고 복음을 실현하는 힘의 원동력은 바로 기도에 있었다. 기도하지 않는 공동체는 참다운 의미의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도 이 기도안에서 해소되고 해결될 수 있다. 기도하는 것은 바로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잘 닮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로 주님께서도 늘 제자들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우리 교회의 모습이 너무 세속화된다고 걱정한다. 교회가 대형화되고 물질문명의 영향으로 내적인것보다 외적인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가 하는 뼈아픈 반성도 함께 있다. 사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이다. 함께 산다고 무조건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한 마음, 한 몸이 되는 일치와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 특히 도시의 교회는 그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 그리고 세속안에서 힘있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공동체는 그저 인간적인 모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크고작은 어느 공동체든 문제가 없을 순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기도로서 사랑과 일치, 용서의 관점, 즉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기도를 통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도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표현이다. 신앙이란 바로 하느님께 신뢰하는 삶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 교회 공동체, 그리고 나의 가정, 내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 혹시 순전히 인간적인 방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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