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기 동안 거룩함과 성인의 모습에 대한 모호한 이해와 빗나간 설명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손해를 줄 만큼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성인의 모습을 흔히 과장되고 미화된 성인 전기 문학안에 나타나는 특성처럼 간주하면서 비상하고 예외적인 특수 특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곤 했다. 그래서 성인이란 태어날때부터 특전을 받아 선택된 소수의 예외적 인물로 여기면서, 못 오를 나무 쳐다보지도 말자는 격의 포기가 일반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의 경우는 지나치게 강조된 종말적 상황 안에서 흔히 성인의 특성(거룩함)이 엄격성을 띈 수덕 행위와 연계되어 이해된 것이다. 여기에 지상 사물에 대한 경시와 포기가 강조되면서 일반 신자들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의 이상과 현실적으로 떠날 수 없는 세상살이의 실재 사이에 놓이는 갈등으로 완성이나 거룩함(성인의 삶)은 추구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가정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신자들은 쉽게 성화의 길, 참된 그리스도인의 충만성에 나아가는 노력을 포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생활하며 평범한 신자로 남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소극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혁신적으로 전환시켰다.
1. 성성에의 보편적 성소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성(聖性:성인의 지위)에 불렸으며,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받는 순간부터 이미 성인으로 살고 있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교회헌장 5장 참조)은 참으로 놀라운 일깨움이었다. 그리스도인 생활에 너무도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 진리가 유감스럽게도 교회 역사 안에 보편적으로 인식되거나 가르쳐진 것이 아니다. 그것이 때때로 일부 신학자들이나 사목자들에 의해 강조되었고 가르쳐지긴 했으나 교회 안에 분위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때는 20세기 전반부 교황 비오 11세 재직시부터였으며 공적으로 선언된 것은 그 후 반세기가 지난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였다.
실로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특은을 받는다. 이로써 원죄 뿐 아니라 일상 범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성령의 집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공동 상속자가 된다(로마8, 15-17 에페 1, 5 갈라 3, 26-27 히브 3, 14 등 참조).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가 그의 서간에서 자주 신자들을 「성인들」 혹 「성도들」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성사를 통해 거룩하신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이미 성인의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더욱 거룩한 삶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 세례성사 때 받은 거룩함을 존재론적(存在論的) 성성이라 부르며 끊임없이 성장해 나아가야 할 삶의 목표를 완성적(完成的) 성성이라 한다. 완성적 성성이란 성인(聖人)들이 이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이루는 완성 상태를 일컫는다.
2. 성성의 유일성과 다양성
성성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하느님만이 홀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 생활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유일하신 주님의 생명에 일치하면서 홀로 거룩하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분의 유일한 신비체인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교회헌장 41항 참조). 한편 근본적으로 유일한 그리스도교 성성은 각기 받은 고유한 선물과 직무를 따라 산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교회헌장 39. 41항 참조). 그리스도인의 성성의 다양성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본성을 통해 잘 이해된다. 그 안에서 성령께서는 산 유기체적 활성화와 조화있는 업무를 위하여 각자 다른 위치와 기능 그리고 다른 능력을 부여하시면서(에페 4, 7 고린 12, 11 참조) 그리스도께 일치시키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성원들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교회를 더욱 활기 띠고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풍요롭게 한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성에 불렸다는 이 교의는 모든 이가 똑같은 상태의 성성에 불렸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있어 꼭 같은 밀도와 심도를 이룬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성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충만함이며 애덕의 완성이라면 각 그리스도인은 그 충만함과 완성에 이르는 데 있어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총과 선물에 다르게 응답하게 되는 것이다.
3. 영성의 대가들이 우리에게 주는 빛
영성의 대가들은 우리에게 어떤 분들인가? 우리가 본받기엔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이들인가? 그들은 주님이 그분의 십자가를 지며 사명을 진지하게 수행하였듯이 그분을 본받아 그들의 상황 안에서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며 맡은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 이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성 생활의 좋은 본보기들이다. 그들이 우리의 본보기라는 것은 물론 그들의 삶을 똑같이 반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따라 우리의 상황 안에서 각자의 십자가를 지면서 우리의 삶을 열심히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성인이라 일컬어질 만큼 위대한 신앙을 이룩한 것은 타고난 그들의 재능이나 지성 또는 공적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연약함과 결점을 지녔던 분들이기에 자신들의 힘을 믿지 않고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께 그들의 삶 전체를 위탁했던 것이다. 과연 성성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서 무상(無償)의 선물이다. 그러나 여기에 인간편의 응답적 협조의 과제가 요구된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충만을 스스로 이루지 못하고 하느님이 인간의 부당성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오시어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그분 자신을 전달하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완성에 나가도록 하신다. 여기에 하느님의 주도적 행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나와 인간을 성화시키는 은총은 인간을 오로지 수동적이게 하지 않고 인간에게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시어 그로 하여금 자유로이 하느님께 응답하고 자기 완성의 과정에서 함께 작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자세와 방법을 우리는 시대와 상황에 토착화하면서 영성의 대가들로부터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4. 영성의 대가들의 선정 규준과 명단
다양한 영성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척도들에 의해 분류된다. 민족 지리에 따라, 역사 연대에 따라, 교의 및 신심에 따라, 생활 상태와 직업에 따라 그리고 수도회 창설자의 카리스마에 따라 영성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소개하게 될 영성의 대가들을 선정하는 데 있어 위의 척도들을 감안하면서 다음과 같은 규준들을 따르고자 한다. 영성사 안에서 큰 빛이 되어 보편적 사표로 잘 알려져 있고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에 기여도가 높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성소에 따른 생활상태와 카리스마에 따라 가능한 한 다양하게 배분한다. 그들 중엔 아직 시복 시성되지 않은 분들도 포함된다. 영성사 전반에 걸쳐 시대적, 문화적으로 대표될 수 있는 인물을 찾는다. 연재 순서는 역사, 연대에 따라 배열한다.
선정된 이들은 17명으로서 그 명단은 이러하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 서방신학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노, 수도생활의 사부 베네딕도, 교회의 진리 수호자 도미니코, 모든 이에게 사랑 받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용기 있는 여성 시에나의 가타리나, 영웅적 명재상 토마스 모어, 영성수련의 스승 로욜라의 이냐시오, 기도의 스승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완덕의 박사 프란치스코 드 살, 착한 목자 요한 비안네, 젊은이들의 스승이며 친구 요한 보스코, 사하라의 은수자 샤를르 드 후코, 신앙의 과학자 떼야르 드 샤르댕, 현대의 순교자 막시밀리안 콜베,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5. 소개방법
먼저 각 영성가의 생애와 그 인품에 관해 살펴본다. 하느님이 태워주신 본성을 하느님의 은총에 협력하면서 어떻게 꽃 피우고 결실을 이루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어서 영성사 안에서 그들의 위치와 카리스마 그리고 기여도가 무엇인지 찾아본다. 끝으로 각 영성가의 독특한 영성을 고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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