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리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때 『내가 이 땅을 네 후손들에게 주리라』(12, 7)는 말씀을 들었지만 실제로 아브라함은 땅 한조각을 소유하지 못한채 여러 해를 두고 팔레스티나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세겜에서 제단을 쌓아 예배를 드린 후 다시 베델에서도 제단을 만들었으며 거기서 다시 네겝 지방으로 옮겨갔다.
심지어는 이집트까지 흘러들어갔다가 미모의 아내 사라를 빼앗길까봐 누이라고 속여 살아남게 되는 극한 상황도 벌어진다. 아브라함이 거역할 수 없는 큰 어른이신 그분의 분부대로 길을 떠났고 묵묵히 그 모든 것을 실행했건만 아브라함이 받아야하는 시련은 더 긴 세월을 요구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오랜 세월 속에서 온갖 시련을 극복하자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사람됨을 인정하셨다는듯 다시 축복을 언약하시고 계약맺기를 제안하신다. 『무서워 말라, 아브라함아. 나는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주며 매우 큰 상을 너에게 내리리라』하시고는 계약의식을 당신 친히 지시하신다. 15장의 계약은 아브라함 당대에 계약을 맺던 의식을 그대로 따랐다. 아브라함은 짐승들을 잡아 반으로 쪼갠 것을 짝을 맞추고 마주 놓은 다음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신비경에 빠져들어가 하느님의 현존을 뵙는다.
해가 져서 캄캄해지자 연기뿜는 가마가 나타나고 활활타는 횃불이 쪼개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죽인 희생제물의 사이를 계약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것이 당대의 계약의식이었다. 계약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반으로 쪼갠 짐승같은 운명이 닥치리라는 표시였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브라함은 쪼개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지 않고 햇불 모양으로 나타나신 하느님만이 그 사이로 지나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의무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어른이 아이와 게임을 할때는 아이의 반칙과 실수를 감안하듯이 하느님과 인간이 계약을 맺음으로써 따라오는 의무이행에 있어서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위반을 감안하실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계약이 파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하느님과 인간이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인간이 하느님에게 상대가 될 수 없는 무자격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편에서 먼저 계약맺자고 제안을 해 오신다는 것은 당신의 무궁무진한 은총과 은사를 무상으로 베풀고 싶어하시는 한가지 이유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 댓가를 바라면서 길러주는 것이 아니듯이 부모니까 사랑하는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어하는 심정, 바로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식을 아무렇게나 그냥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게끔 교육을 해야 하듯이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사람에게는 거기에 합당한 요구도 하신다.
『나는 전능한 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살아라.…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뿐 아니라 네 후손 대대로 지켜야 한다. 너희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라. 이것이 너와 네 후손과 나 사이에 세운 내 계약으로서 너희가 지켜야 할 일이다』(17, 1·9 참조)
하느님 앞을 떠나지 말고 흠없이 사는 것, 그리고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는 것, 이것이 하느님 백성으로서 지녀야 할 외적인 표시다. 이 표시는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하느님 앞에서 흠없이 살면서 하느님께 충실을 다하라는 의무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순전히 하느님 호의에서 나온 이 계약은 앞으로 출애굽 이후 시나이 계약으로 좀 더 장엄하게 공식적으로 맺어지게 될 것이며 구약의 모든 계약들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 때의 새로운 계약, 십자가상의 죽음의 결정적인 계약을 준비하는 것이 된다.
▨ 노아의 배 치수에 대하여
12회에 실렸던 노아의 배 치수는 필자가 도량 환산을 잘못한 것이기에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공동번역 창세기 6장 15절에 배 길이 300자, 너비 50자, 높이 30자라고 되어 있는 「자」(尺)는 정확치 않는 척도다. 라틴어 원본에는 길이 300 꾸비뚬(cubitim), 폭 50 꾸비뚬, 높이 30 꾸비뚬이라고 되어 있다. 1꾸비뚬은 「한팔길이」라고 하는데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까지를 말하며 보통 46~56㎝가 된다. 이것을 평균 50㎝로 하여 노아의 배 크기를 환산하면 길이 150m, 폭 25m, 높이 15m 정도가 된다. 타이타닉호가 길이 259m 폭28m 높이 19m이니 그 배 보다는 조금 작은 배이다. 이것을 지적해주신 독자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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