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한 권의 그림동화책이 어른들을 낯 뜨겁게 만들고 있다. 정치가 사라진 정치권, 공공연히 법이 무시되는 법조계, 배움과 가르침의 질서가 무색한 교육계, 사랑과 자비는 메마르고 갈등과 싸움만이 횡행하는 종교계 등등 어느 한 곳 정상적인 곳이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 '자성의 거울'을 들이미는 그림동화책 '거울이 없는 나라'.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으로 유명한 분도 우화시리즈 36번 째 권.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김율희(임마누엘라)씨의 우화 네 편을 묶었다. 무엇보다 세 번째 창작동화(우화)라는 점과 분도출판사 특유의 꼼꼼한 기획출판이 돋보인다.
표제작 '거울이 없는 나라'는 얼굴은 잘 생겼지만 작은 흉터를 가진 임금님 이야기. 흉터 때문에 거울을 보기 싫어하는 왕은 어느 날 나라 안의 모든 거울을 없애라고 명령한다. 여기서의 '거울'은 어른들의 눈에 쉽게 '양심' '반성하는 마음' '자성' 등을 비유하는 말로 새겨질 수 있다. 어쨌든 거울을 없애자 온 나라 백성들은 씻지 않아 차츰 더러워지고, 추해지고, 게을러지면서 악한 모습까지 보인다.
그러나 외딴 두메 산골에 사는 한 소녀가 거울을 지니고 마을에 내려갔을 때 사람들은 예쁘고 깨끗한 소녀를 시샘하며 왕에게 데려갔고, 소녀에게 벌을 내리려던 왕은 소녀의 청에 못 이겨 거울을 들여다보고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거울을 보는 것은 단지 얼굴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할머니는 거울을 볼 때 겉모습만이 아니라 마음도 들여다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는 소녀의 말을 듣고, 초롱초롱 빛나는 소녀의 두 눈을 들여다보면서 왕은 왜 사람에게 거울이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 어른들에게 가끔은 '자성의 거울'을 들여다보길 은근히 꼬집는 책.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줄거리와 따뜻한 사랑의 정신, 동심 가득한 그림으로 다가선다. 이 책은 어른들도 가끔은 동화나 우화에 귀기울일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준다. 좋은 동화나 우화는 단순하지만 의외로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는 큰 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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