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아비가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이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신앙의 응답은 마치 격렬한 투쟁과 같이, 아니 죽음처럼 모질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모진 죽음 후에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더 이상 시험할 것이 없으셨던지 많은 축복과 더불어 평온한 여생을 허락하셨다. 이사악이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의 행위에서 공포를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성서는 더 이상 설명이 없다. 어쨋든 이 이야기가 주는 여운이 길어 조금 더 머무르고자 한다.
좬아브라함은 칼을 들기 전에 초조하게 좌우를 둘러보지도 않았고 주님의 마음을 돌리려고 사정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주께 간절히 빌었던 일은 따로 있다. 소돔과 고모라 도시를 멸하기 전에 의인이 50명만 있으면 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에누리를 하면서 주님의 의노를 제지하려 했던 아브라함이 아니었던가.
그를 시험하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희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희생도 하느님이 요구하신다면 너무 클 수가 없다는 것도 또한 알고 있었기에 그는 칼을 뽑았던 것이다(아브라함의 제사-키에르케고르의 묵상)
아브라함은 이제 몹시 늙었다. 야훼께서는 매사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주셨다(24, 1)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결혼시키기 전에 아내 사라를 잃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마지막으로 아들 이사악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심복을 고향으로 보내면서 가나안 여자가 아니라 같은 종족의 처녀를 신부감으로 찾아오겠다는 맹세를 시킨다. 이것은 순수한 혈통의 보존과 가나안 족의 우상숭배의 오염을 막기 위한 처사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고향에 도착해 우물가에 앉아 쉬면서 하느님께 기도한다. 제 주인 아브라함의 하느님, 오늘 일이 뜻대로 잘 되게 해주십시오. 하느님의 심복 아브라함에게 신의를 지켜주십시오. 저는 지금 이 샘터에 서 있습니다. 저 성에 사는 여자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면 저는 그들에게 항아리를 내려 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저에게 물을 마시게 해줄뿐 아니라 제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해주는 아가씨가 있으면 그가 바로 이사악의 아내감으로 정해주신 여자라고 알겠습니다. 이로써 하느님께서 제 주인에게 신의를 지키시는줄 제가 알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과연 예쁜 처녀 하나가 나타났는데 아브라함의 종이 하느님께 기도하며 요구했던 그 표징 모두를 이루어주었다. 자신에게뿐 아니라 낙타들에게도 넉넉히 물을 마시게 해준 그녀는 바로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손녀딸 리브가였다. 아가씨는 뛰어가서 어머니 집 식구들에게 이 일을 알렸다. 그런데 리브가에게는 라반이라는 오라버니가 있었다(24, 28). 리브가가 어머니에게 가서 알렸다는 말은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버지가 안계신 집안에서 가장의 역할과 출가하지 않은 딸에 대한 권리와 의무는 장남의 몫이다. 그래서 라반이 리브가의 혼사문제에 적극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라반은 후에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 야곱이 피신해왔을때 조카를 종처럼 많이 부렸으며 욕심많고 타산적인 이 삼촌으로 인해 또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표징이 이뤄진 것은 하느님이 원하신다는 뜻이요, 게다가 그 처녀는 예쁜데다 친절하고 관대한 품성까지 지녔으니 아브라함의 종은 서둘러 혼담을 진행시켜 리브가를 이사악에게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동안의 경위를 낱낱이 이사악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아브라함은 이미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사악은 리브가를 천막으로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다. 이사악은 아내를 사랑하며 어머니 잃은 슬픔을 달랬다(24, 67). 마지막 절에 「어머니 잃은 슬픔」은 원래는 「아버지 잃은 슬픔」이었던 것을 후대의 성서 편집자가 「어머니」로 바꾸었을 것이다. 이렇게 이사악의 생애는 순탄하게 그려지고 있다.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 여럿 있는데 마치 어린양 같은 이사악이 그중에 한 인물이다. 이사악이 석녀였던 사라에게서 난 것은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남을, 이사악이 올라갔던 모리아산은 갈바리오산을, 제물을 사를 장작을 지고 간 것은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을, 아버지께 반항치 않았던 이사악은 어린양처럼 묵묵히 입을 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오르게 한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기쁨이자 고뇌의 극치를 안겨주었던 이사악,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위대한 신앙의 최고봉에 이르게 한 결정타 이사악, 하여 이사악은 그것만으로도 생애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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