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삶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어떤 빛을 던져주는가, 어떤 빛으로 남는가. 시인 신달자(엘리사벳)씨가 최근 낸 신작시집 '아버지의 빛'은 작가의 지난 생을 아버지가 던진 빛, 함께 해온 빛의 투영 속에서 반추하고 있다.
시인이 자신보다 자신에게 더 가깝고 깊숙이 접근하는 이 세상의 투명한 거울이라고 언명한 시, 그런 시의 조각 이상의 의미를 이루고 있는 시어로 토해 낸 '아버지의 빛'은 작가의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있어 시는 자전적인 거울이라고 말해온 신달자 시인은 자신의 8번째 시집 '아버지의 빛'을 통해 일상적 생활에 묻혀 형상화되지 못한 생의 모습을 가시화.가청화하는 관계로써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의 빛'은 사별한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그 그리움이 삼라만상에 배어들며 절절함과 깊이를 더해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늘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탈각시킨 메마른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의 시도는 이번이 여덟번째임에도 실패하는 듯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 여정에서 신달자 시인의 오랜 경륜과 사랑이 드러남을 그의 문학을 지켜봐 온 이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에세이.소설 등으로 성가를 높였던 신씨가 이제 다시 모진 마음으로 시의 진수에 접근하고 있는 시집이 '아버지의 빛'이다.
"막 떨어진 나뭇잎 하나/밟을 수 없다/그것에도 온기 남았다면/그 스러져가는 미량의 따스함 앞에/이마 땅에 대고 이 목숨 굽히오니/내 아버지 호올로 가시는/낯설고 무서운 저승길/내 손 닿지 않는 먼 길/비오니/그 따스함 한가닥 빛이라도/될 수 있을까 몰라/울 아버지/동행길의 미등이 될 수 있을까 몰라//막 떨어진 나뭇잎 하나". 시 '아버지의 빛〈1〉~〈6〉'과 함께 아버지에 대한 정을 담은 '나뭇잎 하나'의 전문이다.
아버지를 묻고 내려오는 길에 만났을 법한 나뭇잎 하나조차 밟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사물 속에 아버지의 빛이 투영되어 있음을 시인은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 각기 다른 부제를 달고 있는 '고속도로' 15편은 마치 시어처럼 150km의 속도로 달려온 작가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며 이는 작가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을 150km의 속도로 예사로이 지나치고 있는 일반을 꾸짖는 듯하다. 따라서 같은 소재를 두고도 간단치 않게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심미관을 씹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아버지의 빛'은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문학세계사 / 118쪽 /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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