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의 대표적 작가 홍윤숙(74.데레사)씨가 그의 9번째 산문집'지상의 끝에서 돌아보는 지상'으로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고희를 넘겨버린 원로작가 홍씨가 지상의 끝에서 돌아본 지상에는 미움, 증오, 원한이라는 무서운 말들은 없고 '눈물과 감사와 이해와 깨달음 그 모든 것을 합친 그리움뿐'이다. 마치 갖은 인고의 세월을 표백하고 현재의 지반을 딛고 선 작가의 모습 마냥.
"한 세상을 살아 보고 나니 그 세상의 희로애락이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색깔 하나의 본체임을 알겠다"는 고백은 미처 우리가 밟아보지 못한 삶의 경지를 경험한 작가의 정신을 느끼게 한다. 한국의 지성사와 함께 해온 작가가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솔직하고 진솔한 자아성찰의 기록을 담은 '… 지상'은 아들이나 손자뻘쯤 될 후손들을 위해 정성들여 한 그루 나무를 심는 노인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지난 47년 스물셋의 나이로 시단에 등단해 이제 반세기를 훌쩍 넘긴 시인이 일궈낸 세계, 그의 말로 태어난 아픔을 누구보다 크게 앓으면서 흠집 난 그 삶마저 품어 안아온 세상은 결국 '치열한 사랑의 세계'임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위로하고 다독이며 자애(自愛)하는 숨은 놀이'였던 작가의 작품활동은 근래 들어 '고통 그 자체가 감사한 생명의 약'이 되는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하게 되는 삶의 무게, 이 속에서 작가는 "책임은 선택한 일에 대해서보다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더욱 뜨겁고 고귀해질 수도 있는 것"임을 삶이 농축된 언어로 전하고 있다. '책임감이란 하느님이 생명을 창조하실 때 그 하나 하나의 생명을 고귀하게 하고 끝까지 지켜가게 하기 위해 불어넣으신 하느님의 의지'라는 언명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기도하는 삶을 가감없이 맛보는 기쁨마저 누리게 된다.
'… 지상'에서 찾게 되는 작가의 모습은 흡사 인생의 땅끝에 다다른 한 초인이 지상의 한가운데 처해 고통에 어쩔줄 모르는 이들, 오늘의 우리에게 한편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같다. "지상의 끝에서 돌아보는 지상, 지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라는 작가의 정리는 "딛고선 현실을 지상의 끝으로 여기고 늘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을 살라"는 외침으로 다가온다.
〈성바오로 / 240쪽 /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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