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늙기 전에, 노동할 건강이 있을 때 농사 짓고 살다 죽겠다"
전원생활의 부푼 기대나 향수를 지닌 도시인의 꿈이 아니다. 경북 봉화, 낙동강이 내려다 뵈는 나지막한 풍락산 산자락에 '살림집'을 짓고 사는 안동교구 정호경 신부의 소박하지만 작지 않은 꿈이다. 68년 사제의 길에 들어선 정 신부가 수십년간 품어왔던 생각을 열아홉평 살림집과 최근 발간된 '손수 우리 집 짓는 이야기'로 귀농, 아니 삶다운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싱그러움을 전해준다.
최근 낙엽송과 진흙으로 빚은 살림집으로 그 꿈을 이뤄가고 있는 정신부는 스스로를 중늙은이 신부라 털어놓는 대목(大木:집 짓는 사람)이다. 농사일이라곤 고등학교 시절 거름을 만들기 위해 풀베기 등을 한 것, 집 짓는 일이라곤 밑일꾼 노릇 해본 것이 전부인 정신부가 살림집 짓기에 나선 것은 자신과 같은 소중한 꿈을 간직한 이들의 용기와 자신감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집 짓는 이야기'에서 정신부는 장삿속으로 집장사들이 지은 집을 '돈귀신 소굴', 아파트를 숨통이 막히는 '도시의 공중감옥'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우리가 사는 집이 살리는'살림집'인가, 죽이는 '죽임집'인가, 나는 고민합니다.…이 땅에 정으로 짓고 정으로 사는 '집생활'은 있는가?"라고 묻는 정 신부는 그래서 자신의 집짓기에서 세가지 다짐을 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집, 분수에 맞는 작고 단순한 집, 그리고 손수 짓겠다는 것이 그것.
'…집 짓는 이야기'에는 정신부가 집짓기를 계획한 때부터 준비과정, 집짓기를 완성하기까지 6년여 동안의 집 짓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까닭에 정신부의 이야기책에는 그만의 독특한 삶의 철학이 배어 있다. 남자라서 꺼릴 만도한 음식 저장간 지을 계획, 세간 마련과 비용을 비롯해 도배, 등 달기, 뜰과 울타리 짓기 일들은 물론 '남자 요강집'이야기 등 정신부가 서슴없이 털어놓는 삶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내비친다.
또, '…집 짓는 이야기'는 이름없이 집을 구성하고 있던 집의 각 부위를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들로 우리 삶에 되살려냄으로써 우리가 사는 집을 애정으로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정신부는 집짓기 과정을 통해 "'손수'하려는 만큼 꿰뚫어 보인다"는 단순한 진리로 자연스럽게 이끌고 있는 것이다.
〈현암사 / 255쪽 / 7500원〉
출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