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은 풀잎의 이슬과 같다고도 하지만 토지에 깊이 뿌리내린 거목(巨木)이 되어 세상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는 사람도 있다.
지난 94년 장장 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완간, 문단 뿐 아니라 세상에 큰 떨림을 가져다 준 작가 박경리(데레사·73)씨. 박씨가 또 한번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갈 「삶의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다.
6월 9일 오전 11시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 오봉산 기슭에서는 「토지문화관」 개관식이 열렸다. 「토지문화관」은 박경리씨가 20여년간 「토지」를 집필하며 거주해 온 자택이 택지개발사업지구에 포함돼 헐리게 되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토지공사가 지원해 건립된 문화공간. 생존 작가를 기념한 문화관으로는 처음으로 앞으로 소설 「토지」와 관계된 「문학관」이 아닌 문학, 음악, 미술, 영상, 만화 등 모든 문화가 교류, 발전하는 공간인 「문화관」으로써 역할 하게 된다.
대지 1500평 연면적 8백여 평의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진 '토지문화관'은 동시통역이 가능한 대회의장, 세미나실, 집필실, 자료실, 야외무대 등을 갖추고 있다.
박씨는 『일회적이고 행사 위주인 공간으로 퇴색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문화관 운영의 큰 줄기를 제시하며 『그러나 건물의 완성까지가 나의 몫일 뿐 앞으로 운영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토지문화관은 각 문화계의 네트워크 형성, 신진문인 발굴, 청소년을 위한 환경 캠프 뿐 아니라 국제적 문화 교류 등의 장으로 「문화의 토양」이 될 전망이다. 개관식에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를 비롯 홍윤숙, 박완서씨, 사위인 김지하씨 등 신자문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해 삶과 환경의 바탕이 될 문화공간의 의미있는 출발을 축하했다. 박완서씨는 토지문화관 이사로 향후 운영을 논의하게 된다.
시인 홍윤숙씨는 『토지문화관이 문화운동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며 『서울 등 수도권과의 교통 연계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도시에서의 막힌 삶을 풀어나갈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개관식 직후 박경리씨는 『그간 문화관 건립에 온 정성을 쏟느라 집필활동도 제대로 못했다』며 『이제 다시 창작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박씨의 표정은 25년간 오로지 토지한 작품만을 집필하며 세상물정에는 관심 없었던 그가 문화관 건립에 마음 쏟은 지난 2년이 결코 쉽지 않은 나날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그가 필생을 통해 닦아온 터 토지는 소설로 또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우리의 생명을 키워내는 어머니가 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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