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푸꼬의 영성은 하느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을 고백한 「위탁의 기도」에 잘 요약되어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이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에 이루어진다면 이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 하여 하느님께 영혼을 바치옵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
푸꼬는 예수님의 「산상 수훈」에 대해 묵상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그 사랑을 주는 대상과 닮고자 하는 열망보다 더 큰 갈증이 있겠는가!』
그는 회심의 순간부터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몰입되었으며 그에게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처럼,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1) 예수님처럼 살다
푸꼬는 예수님과의 대화체로 그의 삶의 규범을 이렇게 기록한다. 『너의 규칙은 나를 따르는 것이다. 너는 내가 행했을 것을 실행하라. 매사에서 이렇게 스스로 물어라. 「우리 주님께서 이 같은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그리고 그 결론을 실천에 옮겨라. 이것이 네게 유일하고 절대적인 규칙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푸꼬는 복음적 권고를 실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능한 한 가장 구체적인 방법으로 본받고자 갈망했다. 그는 예수님의 지상 생활을 세 양태로 구분한다. 하나는 사람들과 함께 사시던 나자렛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은거하여 성부와 대화하시며 사시던 사막의 생활이며 마지막 하나는 복음을 선포하신 공생활이다. 푸꼬는 예수님의 세 생활 양태 중 특별히 나자렛의 성 가정의 드러나지 않는 가난한 생활을 자신이 본받아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에서 세 양태의 삶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필요했듯이 푸꼬에게도 단계적으로 그분의 삶을 따르게 되었다.
푸꼬는 나자렛에서 베니아베스와 그리고 타만라셋에서 그 지방의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자신의 생활 기준으로 삼았다. 예수님이 꼴찌의 인간들과 같은 생활을 나누셨기 때문이다. 그가 예수님의 가난, 굴욕, 천대받음을 힘껏 본받고자 했던 이유도 그분을 참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을 모시고 살다.
푸꼬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사시던 성지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특별한 은총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떠나 다시 성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현존은 성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그분이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야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복음이 한 번도 선포된 적 없는 먼 나라들에도 가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자 하는 푸꼬의 영성은 성체성사와 성서 그리고 이웃 형제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에서 잘 나타난다.
성체께 대한 경배는 푸꼬의 영성 생활의 핵심을 이룬다. 그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대해 그가 마치 함께 오래 생활했던 사람을 대하듯이 표현하고 처신하였다. 성체께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그의 글 도처에서 엿볼 수 있다.
푸꼬는 하느님 말씀인 성서에 대해 성체 성사 못지 않은 영적 자세를 취하였다. 푸꼬는 전 생애에 걸쳐 성서의 말씀, 특히 복음말씀을 적어가면서 묵상했다. 예수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그분의 삶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에 의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단순하고 실질적인 성서 묵상 방법을 소개하였다. 우선 예수님의 말씀을 읽는다. 이어서 그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실행 하셨을지 추론한다. 셋째 단계에서 자신은 그 말씀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할 것인지를 묵상한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대화(기도)로 끝맺는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5, 40). 푸꼬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였다.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바로 이 말씀이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킬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를 사로잡았다고 표현한 적 있다. 그리고 그는 이웃 사랑을 성체성사와 연결짓는다. 트라피스트 수도원과 나자렛에서 지낸 여러 해의 관상생활은 그를 그리스도와 긴밀히 일치하도록 했으며 그것은 형제애를 실천하는 활동 중에도 약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와 더욱 일치하면서 사하라 사막에서 이웃을 위한 인정 넘치는 사랑을 실천하게 했다.
2. 순교의 삶
초기 그리스도교 순교록들과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의하면 순교는 무엇보다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의 절정이다. 이 진리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재천명하였다. 예수님을 철저히 모방하고 싶어하던 푸꼬는 당연히 순교를 염원하였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신 주님,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저의 목숨을 주님 위해 바치나이다. 주님께 저의 생명을 송두리째 바치나이다』
그는 순교란 인간적 열의나 영웅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허락하실 때 받을 수 있는 은총임을 잘 알았기에 그것을 간절히 청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받기 위한 협력으로 매일의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져야 함을 깨달았다. 『너는 순교자로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알몸이 되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그것이 오늘이기를 소망하라. 네가 이 무한한 은총을 바랄 수 있도록 충실하게 깨어서 십자가를 지라』
푸꼬는 과연 순교자인가?
그는 신앙 때문에 어떤 뚜렷한 박해자로부터 처형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인 순교자들처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증언하며 장렬히 목숨을 바친 순교 장면을 표출하지도 못 하였다. 약탈자 무리 중 한 소년의 실수로 어이없이 희생된 실패로 끝난 죽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미래를 예감한 듯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죽음에 대해) 실망했다면 성 바오로와 성 베드로가 순교한 그 날 저녁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실망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언제나 겉보기에는 실패한 듯이 보이나 그 안에 십자가의 실질적인 승리가 있다』
순교자들은 기도와 사랑 안에서 일치된 복음적 일상을 살았던 분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살았고 그분을 위해 근본적 결단을 내리며 그분에게 모든 것을 바칠 용의 중에 살았던 것이다. 극도의 시련인 죽음은 다만 순교자들의 그러한 삶을 세상에 밝혔을 뿐이다. 회교도들 사이에서 복음을 증거하며 지냈던 푸꼬는 언제나 간접적 박해를 받았고 목숨의 위험에 놓인 채 살았으며 매일 매 순간 하느님께 목숨을 바칠 용의 중에 매일의 순교의 삶을 살았다. 그의 유품 수첩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너는 오늘 순교자로 죽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살아라』
푸꼬는 죽을 때 순교자로 인정받을 만한 외적 상황과 격식 중에 있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철저히 순교자적 삶을 살았던 그는 진정한 순교자적 자세로 죽음에 임했을 것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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