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 최인호
내 서재의 한 면에는 7∼8년전부터 흑백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전신을 감싼 검은 수녀복에 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고, 도수높은 안경을 쓰고 있는 프랑스 수녀의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을 S수녀님으로부터 전해 받았다.
이 수녀님은 가르멜회 초대 수련장 수녀였던 마리 마들렌이다. 이 수녀는 6.25전쟁 때 서울에서 피납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중강진에 이르기까지 수백킬로에 걸친 죽음의 행진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이다. 이미 그 행진에서 살아남은 불란서의 구인덕 신부(셀레스땡 꼬오스)를 임종 직전에 성모병원에서 만난 적이 있던 나는 언젠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설로 형상해 보이고 싶다고 가슴에 묻어두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소재를 그냥 기억의 창고 속에 보관해 두고 있었던 것은 자칫하면 이들의 평전을 내가 기록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히 말해서 성인에 분명한 마리 마들렌 수녀님의 일생을 쓸 자격도 없으며 그런 평전을 기록할 만큼의 자질도 없다.
이제서야 내가 이 소재를 소설로 형상화하려는 것은 또하나 내가 갖고 있던 소재와 합일하는 과정에서 느낀 절묘한 조화 때문이었다. 작가는 언제나 마음 속에 몇 개의 소재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마치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잉태하고 있는 임산부처럼.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소재가 다른 소재와의 영감적 교감에서 일치될 때 마침내 그 소재는 자궁을 통해 태어나는 것이다. 마치 난자와 정자가 합쳐져야 수정이 되듯이.
난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종교, 특히 가톨릭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지난 부활 사순 동안 나는 이 소재를 줄곧 반추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항상 입덧과 산통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새 소설을 쓰기 전에는 두렵고,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자가 해산할 즈음에는 걱정이 태산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된다(요한 16, 21)』 나도 소설을 시작하려는 이 즈음에 주님의 말씀처럼 걱정이 태산같다. 그러나 나는 주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가톨릭신문을 통해 좋은 가톨릭 작품 하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제목을 「영혼의 새벽」으로 한 것은 창세기에서 따온 것이다. 인간의 새벽은 하느님의 창조와 맞닿아 있다. 인간의 타락은 그 새벽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종교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못박혀 돌아가셨음에도 아직도 하오의 저녁과 캄캄한 밤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또 다른 새벽이 찾아올 것이다. 그 또 다른 새벽을 나는 부활이라고 부르고 싶다. 많은 기도 부탁드린다.
화가의 말 - 이우범
역사 깊은 가톨릭신문에 최고의 작가인 최인호씨와 짝을 이루어 작업을 하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종교신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다른 매체보다는 조심스러운데, 듣기에 소설의 내용이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엄숙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 설명하는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상징성을 가미한 묘사를 하려고 합니다.
정성껏 그림을 그려서 독자 여러분에게 다가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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