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세계화, 지구화의 조류 안에서 문명의 충돌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동, 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제 세계는 명실공히 하나의 지구촌을 이뤘으며 잦아진 이민으로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지닌 민족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형제애와 연대의 인간 관계 속에서 평화롭고 조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서로간의 차이와 이질감을 넘어서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적인 요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촌에는 형제애와 평화로운 공존보다는 오히려 민족과 인종, 언어와 종교 등을 이유로 끊임없는 분쟁이 발생하고 있으며 어떤 지역은 그로 인해 죄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살상되는 비극에 빠져 있다.
「대화」는 평화를 향한 유일한 길로 보인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대화의 길은 새 천년기 인류가 지향해야 할 평화의 길이다.
문화의 시대, 정보사회, 세계화의 시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면서 열린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를 주제로 현대 세계와 한국사회, 그리고 교회를 인도할 지침을 모색해본다. 그 첫번째 순서로 올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평화의 날 담화 요지를 소개한다. 이어 종교간 대화, 동서양의 대화, 전통과 현대, 과학과 신앙 등에 대해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대화의 독보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인터넷을 포함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이다.
인간 관계는 진정한 보편 형제애의 희망적인 이상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안정된 평화를 보장할 길은 없을 것입니다. 인류는 아직도 격렬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문화와 문명이 서로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 연대를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 형태의 문제들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평화의 미래가 위협받을 것입니다.
인간 문화의 복잡성과 다양성은 놀랍습니다. 자기 문화의 가치를 평가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문화는 필연적 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문화에 대한 사심 없고 편견 없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문화들은 흔히 그 외면적인 다양성 아래에서 중요한 공통 요소 들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문화적 다양성은 인간의 일치라는 더욱 폭넓은 전망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문화적 차이와 문화간 대화
과거에는 문화적 차이가 흔히 민족들 간의 오해의 근원이자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지금까지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일부 문화의 다른 문화에 대한 공격적인 주장을 목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불안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문화와 관련해 근본주의적인 정체성 주장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서구 문화적 유형들에 대한 기타 문화들의 맹목적인 모방 역시 위험합니다. 서구 문화 유형들은 그 뛰어난 과학적 기술적 특색 때문에 유혹적이고 매력적이지만, 그 인간적, 정신적, 도덕적 빈곤의 심화는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준거를 두지 않는 문화는 그 혼과 방향을 상실하고, 죽음의 문화가 됩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에게 봉사하는 문화는 대화와 친교를 통하여 완전해져야 합니다. 이러한 대화와 친교는 「한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신」(사도 17,26)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인류 가족 최초의 근본적 일치에 토대를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세계 평화의 날 담화의 주제인 문화간 대화는 인간 본성 그 자체와 문화의 본질적인 요구로 나타납니다. 대화는 사랑과 평화의 문화를 건설하는 훌륭한 수단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과 위험
개인 생활과 인간 생활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영향을 받는 오늘날에는 문화간 대화가 특히 절실합니다. 범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영상과 언어의 자유로운 흐름은 사람들 사이의 정치 경제 관계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까지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지만, 일부 부정적이고 위험한 측면들도 지니고 있습니다. 몇몇 나라들이 이러한 문화 『산업』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자국의 상품을 지구 곳곳의 대중들에게 보급하고 있으며, 그 수효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은 문화적 특수성을 해치는 강력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품들은 은연 중에 가치 체계를 내포하고 전달하므로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정체성의 박탈과 상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민문제
대화의 방식과 문화는 이민이라는 복잡한 문제에 이를 때 특히 중요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서로 다른 문화들의 만남과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거기에 따르는 긴장은 주기적인 갈등 분출의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이민들은 언제나 모든 인간의 존엄에 합당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민들이 지역민들의 관습과 쉽게 양립될 수 없는 그들의 특정한 문화 관습을 공적이고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어느 정도 있는지 결정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진정 열려 있는 분위기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역사적 시간에, 주어진 장소, 주어진 사회적 여건에서 공동선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를 하여야 합니다.
공동가치들에 대한 인식
문화간 대화는 모든 문화에는 공통된 가치들이 있다는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인류의 가장 참되고 독특한 특징들을 드러냅니다. 관념적인 편견과 이기적인 욕심을 물리치고, 사람들에게 이러한 공통된 가치들에 대한 의식을 일깨움으로써,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대화에 이바지하는 그러한 본질적으로 보편적인 문화적 「토양」을 육성하여야 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들도 이러한 과정에 결정 적인 기여를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연대.평화.생명.교육의 가치
세상에 불평등이 증대하고 있는 이 때, 더욱 폭넓게 강조하여야 할 최고의 가치는 연대의 가치입니다.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발전 시키는 기본 관계에 의존합니다. 국가들도 서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범세계적인 상호 의존의 현실은 전인류 가족의 공동 운명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고, 연대의 덕목을 더욱더 소중히 여기도록 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상호 의존의 증대가 여러 가지 불평등을 폭로해 왔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의의 증진이야말로 진정한 연대 문화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남는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문제가 아니라, '제외되거나 주변화된 온 인류 가족을 경제적 인간적 발전 범위 안으로 진입하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연대의 문화는 평화의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들 간의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도정에는 세계가 직면해야 하는 여러 가지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불안을 확산시키는 군비 증강과 핵확산 방지 노력의 미흡한 진전은 경쟁과 갈등의 문화를 조장하고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계는 과거와 현재의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인 지뢰와 끔찍한 생화학 무기의 사용이 가져온 비참한 결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위협들에 맞서 우리는 민족들 사이에서 평화와 이해의 대의를 촉진하는 구체적이고 시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느껴야 합니다.
문화들 사이의 진정한 대화는 상호 존중의 감정은 물론 생명 자체의 가치에 대한 생생한 의식을 고취시킵니다. 평화를 염원하면서 생명을 경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시대는 생명에 대한 아낌없는 봉사와 헌신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잔인함과 무관심으로 고통스럽고 가혹한 운명을 맞이한 슬픈 광경도 목격하였습니다.
살인, 자살, 낙태, 안락사, 신체 상해, 육체적 심리적 고문, 온갖 형태의 부당한 강압, 독단적인 투옥, 사형에 대한 불필요한 의존, 국외 추방, 노예 소유, 매춘, 여성과 어린이 매매 등 비극적인 죽음의 악순환이 그것입니다. 여기에 연구를 위한 인간 배아의 복제와 이용과 같은 유전 공학의 무책임한 실태를 더 보태야 합니다.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려면, 문화간 대화는 민족 중심의 모든 이기주의를 극복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겸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책임입니다.
적절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건실한 윤리 구조 안에서 얻는 다른 문화들에 대한 지식은 자기 문화의 가치와 한계를 더 깊이 인식하게 하고, 동시에 온 인류에게 공통된 유산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바로 이렇게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교육은 더욱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특별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용서와 화해
예수님 탄생 2000년을 기념하는 대희년 동안, 교회는 화해에 대한 적극적인 요청을 강력히 체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청은 문화간 대화에서도 중요합니다. 대화는 사실 전쟁과 갈등, 폭력과 증오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비극적인 유산에 짓눌려 흔히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의사 소통의 단절로 생긴 장벽을 헤쳐 나가는 길은 용서와 화해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은 우리에게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과 대화를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을 허물 수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용서와 화해가 일상 생활과 모든 문화의 관행이 되며, 인류의 평화와 미래를 건설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충만해집니다.
젊은이들에 개한 호소
저는 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세계 젊은이들에 대한 특별한 호소로 끝마치고자 합니다. 복음은 여러분에게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그 근원을 두고 있는 인류 가족 본래의 일치를 재건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연대와 평화와 생명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