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 자리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나보다 훌륭한 선배님들도 계시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후배들도 있지않습니까? 나는 교회사 연구 분야의 중간 세대입니다. 어쩌면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런 뜻에서 후학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대표해서 이 상을 받는다는 마음이 앞섭니다』
제3회 가톨릭학술상에 선정된 「천주교 전주교구사 Ⅰ」의 저자 김진소 신부는 수상의 공을 결코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답사 아니면 산골 연구실에 묻혀 한 포기 들풀같이, 평범한 촌부처럼 살아온 그에게 현세에서 주어지는 상(賞)이라는 게 그렇게 큰 의미로 와닿지는 않아보였다.
그럼에도 수상 소식을 듣고 내심 반가왔던 이유는 이제야 한국 교회가 교회사연구의 가치를 인정해주는구나 하는 마음에서다. 무엇보다 후학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계기도 될 것 같았다. 속곳이라도 팔아 뒷바침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한 후학들에게 이 상이 조금이라도 격려가 됐으면 하는 심정이다. 『사실 그동안 교회사는 좥똥치는 막대기좦였습니다. 필요하면 찾고 쓰고나면 버리고 또 필요하면 찾고는 했죠. 역사란 생명의 활동력을 보는 것이라 꾸준히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1, 2권으로 구성된 전주교구사는 200자 원고지 총 2만2000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에 대해 김신부는 「아는 것은 다 쓰자」라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용하지 않아도 역사란 단절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입교자가 60~70%에 이르는데 이들은 교회용어에 익숙치 못하다. 조과(朝課) 만과(晩課)라는 말도 모를 정도다. 내가 죽으면 더이상 밝혀낼 사람이 없다는 심정으로 매달리다 보니 양이 많아졌다. 특히 「방대한 양」에 일조한 것은 3000건이 넘는 주해 항목. 이는 철저하게 사료를 밝히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기존의 적지않은 교구사들이 호교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점과는 달리 객관적 학문적 과학적 진실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김신부는 후학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펜 끝으로 장난하면 안됩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상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서도 안됩니다. 어떤 형태로든 선조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것을 신앙으로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발로 뛰어다녀야 하죠』 「역사는 사료」라고 했지만 28년간 교회사 연구를 해오면서 김신부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 『사료를 믿는 것은 미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사료의 부정확, 오기, 허위가 많다는 말이다. 현지 답사나 탐문을 통해, 또다른 사료와의 대조를 거쳐 무엇이 은폐되어 있고 무엇이 진실인가를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같이 전주교구사를 펴낼수 있었던 것은 순교자와 신앙선조들의 전구 덕분이었다』는 김신부는 『그러기에 제 고장, 제 조상, 자기들의 역사를 자신들의 손으로 썼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역사의 한 사건을 두고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데 그 지방민의 정서는 참으로 중요하다는 말이다. 같은 선상에서 서양선교사들의 시각으로 쓰여진 한국교회사를 한국인의 시각에서 들여다봤다는 사실도 이 책이 갖는 큰 의미로 볼 수 있다. 『한국교회사는 순교를 너무 중시하고 있습니다. 죽음만 이야기하게 되면 연계성이 없어집니다. 나와는 다른 차원의 삶이지요. 순교자는 우리와 먼 인물이 됩니다. 이제는 고난과 공포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준 선조들의 삶을 되돌아볼 때입니다』
교회사가 읽히지 않는 이유도 순교자들을 포함한 선조들의 생활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는 김신부는 「신앙은 문화의 소산」이라고 강조했다. 당시의 문화, 노래, 민간신앙 등을 통해 『아! 우리 조상은 바로 나였구나」하는 동질감을 가져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교회사가 감동을 줄 수 있고 널리 읽히게 된다고 주장한다. 1973년 교통사고로 나흘만에 깨어나고 1980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말과 걸음마를 다시 배워야했던 김신부. 교회사에 대한 주변의 무관심, 물량주의와 성과주의에 기인한 성급한 요구, 인간적인 섭섭함과 배신감 등등 숱한 난관과 주변의 몰이해로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거져 얻은 목숨」,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이런 우리 조상들의 삶을 더 깊이 꿰뚫어보는 작업을 보충하려고 합니다. 특히 우리 고유의 「효신앙」도 보급하고, 옛날 책을 현대문으로 번역하는 작업도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시 한번 전국을 걸어다니면서 신앙선조들의 삶을 체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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