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앙 공동체는 자발적으로 형성됐고 또 한국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초창기에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를 위한 빛나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시작부터 박해의 상황 속에 돌입, 초창기 교우들의 복음 선포와 토착화 노력은 어려움 중에 수행될 수 밖에 없었다.
한국교회는 종교 자유가 보장된 이후 중국 교리서들이 번역 되어 토착화를 위한 활동들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4·19, 5·16 등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교회 토착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후 토착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토착화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한국교회에서의 토착화 노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아 열린 사목회의에서는 12개 분야 중 11개 분야의 의안에서 한국교회 토착화의 필요성과 과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한편 한국사목연구소는 1987년 한국 천주교회의 토착화 전망이라는 주제로 제1차 학술회의를 개최한 이래 1999년 10월까지 총 50회에 걸친 토착화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토착화의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늘의 한국과 한국적인 것에 알맞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단순히 과거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시대 상황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우리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인식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우선 다종교 상황을 고려하는 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구조적인 쇄신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질적인 발전과 성숙이 필요하다. 한국천주교회의 현실 진단에서 신앙 성숙과 쇄신을 요구하는 요청 중에는 신앙 생활의 쇄신과 질적 성장, 진정한 회개, 사랑과 친교, 대화, 나눔, 봉사, 증거, 선교 등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성직자의 권위주의와 평신도의 무사안일주의가 극복돼야 한다.
다음은 한국천주교회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교회가 로마 가톨릭적인 성격이 강할수록 교계 제도가 중앙집권화 되고 권위주의적인 성격이 크게 드러난다는 주장이 있다. 교회 의사결정에서도 민주적 방식이 회복돼야 한다.
그러면 한국적 그리스도 신앙은 어떤 것일까. 한국적 신앙표현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돼야 한다. 토착화는 그리스도 신앙의 한국적 표현이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잇는 한국 상황에서는 우리의 문화가 된 전통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에 바탕을 둔 인간적 가치들을 개방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안에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표현 되도록 하는 그리스도 신앙의 한국적 표현들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다원상황을 고려한 신관 중심주의와 그리스도 중심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스도 중심성」 즉 「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세주」라는 표현이 이슬람권, 힌두교권, 공산권 지역에서는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그리스도 중심적 교리보다 하느님 중심의 교리가 더 적합 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 문화의 그리스도적 재창조도 지적할 수 있다. 한국의 고유한 문화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의 빛으로 창조적으로 재해석될 때 진정한 토착화가 이뤄질 수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현실적 적응으로서의 토착화를 살펴볼 때 우선 민속 명절, 축제들의 토착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추석, 구정들이 그러하다. 우리의 많은 명절과 축제들을 그리스도교 축제로 토착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한국의 전통적 가치들을 토착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예로부터 부모와 조상을 섬기는 것을 인륜의 중대한 일로 보았으며 이는 십계명과 연관해 토착화할 수 있다. 조상제사의 토착화 역시 그 가능성을 갖고 있다. 신앙의 내적 요구로서의 지속적인 토착화 과제 역시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토착화는 변화하는 시대와 장소에 주체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이다. 한국교회는 한국적이면서 아시아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교회가 돼야 한다. 토착화는 또한 과거 지향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어떤 사회 현실 속에 정지될 수도 없다.
토착화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자신이 처한 시대와 장소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적응하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고 나름대로 자발성과 주체성을 지니고 교회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한국적인 그리스도교 교회로 우리 사회에서 한국인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자리매김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