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 사는 주부 K씨. 저녁 식사를 마치고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모처럼 TV 앞에 모여 앉았다. 하지만 K씨는 이내 다른 채널로 돌려야 했다. 낯뜨거운 애정장면이 계속해서 펼쳐졌기 때문. 이런 경험은 비단 K씨 뿐 아니라 최근 어느 가정에서든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풍속도이다.
요즘 영화, 방송계는 폭력, 불륜, 살인 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유행처럼 쏟아지고 있다. 충격적인 정사 장면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 「노랑머리」 「거짓말」, 그리고 아침시간이나 가족들이 시청을 가장 많이 하는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도 불륜, 이혼 등의 내용이 많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소재의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에 대성공하는 소위 「대박」이라는 데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이런 류의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실정.
언론도 이들 흥행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 문제의 본질적인 심각성보다는 단순한 흥밋거리로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특히 2000년을 목전에 둔 세기말에 더욱 활개를 치고 있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미디어계 종사자들은 이런 사태를 두고 일종의 「세기말 증후군」이라 진단한다. 대중들은 한 세기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안심리를 자극적인 폭력, 섹스 등의 미디어로 해소하려는 경향이 일부 있다는 것.
이렇듯 비정상적인 소재의 드라마나 영화가 범람하게 되자 교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교회법적으로 정면 위배되는 낙태, 폭력, 불륜 등의 내용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안에서도 미디어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이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저변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여론을 결집시켜 한 목소리를 내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교회 관계자들은 『문제는 일부 신자들이 이러한 영상물을 접하고도 단순히 시대적 상황에 따른 것으로 간주하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있다』면서 『자칫 성인 신자들의 소극적 태도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영화 「노랑머리」를 관람했다는 한 젊은 신자는 『화제가 됐던 영화라 호기심에 친구들과 함께 보게 됐다』고 밝히면서 『여기서 나오는 정사, 낙태장면 등이 처음엔 상당히 충격적이었지만 볼수록 무감각해져 그저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한 부분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대중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한 나라의 문화나 유행을 이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파급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히트했던 드라마나 영화의 주연들이 입었던 옷이나 액서사리는 순식간에 거리로 퍼져나간다. 또한 폭력적인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나면 이것을 모방한 범죄가 유행처럼 발생할 정도.
시청각 종교 교육 연구회(책임=임인덕 신부) 서울지사장 노종성씨는 『사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자들이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부분은 인정하지만 뚜렷한 주제의식 없이 자극적인 쪽으로 몰아간다면 문제가 있다』며 『교회 안에서도 일련의 상황에 의식을 가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세미나, 강좌 등을 통한 학문적인 논의와 연구가 심도있게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회여론이 형성되어 나간다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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