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호승(프란치스코)씨가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작과 비평사)와 어른들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열림원)를 동시에 냈다.
20년 전 첫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펴낸 이후 97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에 이르기까지 명징한 언어로 고운 서정과 사랑을 노래해 온 정씨. 한 구절의 잠언처럼 가슴을 울리던 그의 시는 이 시집에 이르러서 약간의 색다름이 느껴지지만 그가 한결같이 보여온 긍정적 세계관에는 변함없다. 시인은 슬픔과 눈물로 희망의 싹을 틔운다.
{종이학이 날아간다/지리산으로 날아간다/비가 오면 종이는 슬쩍/남겨두고 날아간다}([종이학]) 종이학에서 종이는 육신이고 학은 영혼을 상징한다. 그리고 비는 눈물이 형상화된 것이고 날아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이 고통스럽거나 힘들지 않다. 시인은 「슬쩍」이라고 아주 가볍게 세상과의 이별을 그린다. 시인이 말하는 「지리산」이 종이학이 날아가야 할 당연한 귀정인 것처럼. {날이 밝자 아버지가/모내기를 하고 있다/아침부터 먹왕거미가/거미줄을 치고 있다/비온 뒤 들녘 끝에/두 분 다/참으로 부지런하다}([들녘])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킬 다른 생명을 유인하기 위해 거미줄을 치는 거미. 하지만 시인은 그런 삶조차 긍정으로 표현한다. 거미와 인간의 부지런함이 같은 것이라면 주어진 삶에 제대로 값하지 못하는 인간은 오히려 미물만 못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비루함, 존재의 비굴함에 대한 경고가 병든 우리의 영혼을 단박에 무너뜨리는 힘을 가진다.
이 시집 「눈물이」를 통해 더럽고 낡은 세속의 진창들을 뿌리침으로써 순결한 날개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기쁨을 전하는 시인은 20년간의 시 작업을 이렇게 정리한다. 『그동안 한웅큼 움켜쥐고 살아왔던 모래가 꼭 쥔다고 쥐었으나 이제는 슬슬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손바닥에 오직 한 알 남아있는 모래가 있다면 그것은 시의 모래일 것입니다. 그 모래는 언제나 눈물에 젖어 있습니다』 「연인」에 이은 두 번째 동화집 「항아리」는 시인이 『나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과정에서 쓰여졌다』는 작품.
젊은 도공의 실패작으로 버려져 오줌독이 된 항아리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종각의 종 밑에 묻혀 종소리를 품었다가 밖으로 울려주는 구실을 하게 된다. 「항아리」를 통해 내린 작가의 존재론적 결론. 『누구의 삶이든 참고 기다리고 노력하면 그 삶의 꿈이 이루어진다』 동화작가 정채봉(프란치스코)씨는 「항아리」에 대해 『우리 가슴에 연필로 또박또박 눌려 써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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