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곁에 항상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있음을 보여준 사랑의 나눔은 메마르지 않는 하느님 사랑의 원천을 보여주는 또 다른 길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도움의 손조차 뻗치지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 이들에게 다가가는 나눔과 사랑의 손길은 곧 생명의 젖줄이고 기적의 샘이다.
절망하고 신음하는 상한 마음을 감싸주고,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은 하느님이 오실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아픔의 그늘에 「한줌의 햇살」이 되고자 하는 소중한 마음이었다. 큰 희망 속에 맞은 2000년, 그러나 사그라지지 않는 경제위기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진 조그만 관심은 겨자씨 만한 사랑이라도 그것이 열매맺을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어려운 사연이 소개될 때마다 코 묻은 백원짜리 동전부터 많게는 한꺼번에 수천만원의 목돈이 밀려든 가톨릭신문 「사랑의 통장」은 이들의 소중한 마음까지 담아낸 「사랑의 저수지」였던 셈이다.
잠시도 마를 새 없이 이들이 채워온 사랑으로 이 사회는 아름다울 수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의 손길이 필요했던 2000년 한해. 「도움, 그 이후」의 모습들을 통해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는 깊은 감사를 전하고 도움을 받았던 분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함께 하길 소망해 본다.
사랑의 나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끊일 듯 끊일 듯 하면서도 이어지는 사랑의 릴레이, 마를 듯 마를 듯 하면서도 솟아나는 사랑의 샘물은 오랜 가뭄 끝에 맞는 단비와도 같은 축복이다. 성장의 그늘에서 끊임없이 아래로만 추락해온 가난한 이들의 삶은 나눔이 없고선 이미 말라버렸을 지 모른다.
이 가운데 힘없는 이들의 고통과 소외에 귀기울여온 본지는 그리스도인들의 「마르지 않는 샘터」, 사랑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해왔다. 도움을 청하는 길조차 몰라 주저앉는 사람들에게 다가간 그리스도인들의 나눔과 사랑은 생명을 살려내고 기적을 일으켰다.
올 한햇동안 가톨릭신문 지면을 통해서 이어진 사람의 나눔은 줄잡아 30여건, 이 사랑의 행렬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사랑의 결실을 맺고 있다. 가난한 마음을 넘쳐흐른 사랑의 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의 삶으로 흘러 들어가 그 어느 때보다 탐스럽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올해 들어 처음 본지에 사랑을 호소해온 이는 부산 구포3동 본당 신상은(골롬바)양이었다. 고3이던 신양은 만성골수염으로 졸업을 앞두고 병마와의 싸움을 시작했으나 7000여만원에 이르는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삶을 접을 처지였다.
성모병원에서 투병하던 그에게 전국으로부터 답지한 사랑의 손길이 전해졌으나 신양은 결국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품에 안겨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도움의 손길은 혼자서는 되돌릴 수 없는 처지의 가난한 이들의 삶에 새로운 안식이 되기도 했다.
악성 임파성 종양을 앓던 김연지(2월 13일자)양은 답지한 성금으로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삶의 기력을 되찾아 만화가의 꿈을 살려가고 있다. 사랑이 새로운 삶을 찾아준 경우는 적잖아 심부전 말기의 권민철(10월 28일자)군도 많이 회복해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또 양창순(7월 9일자)씨도 독자들의 도움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다.
죽음 앞에서 빛나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이들도 적잖았다. 본지에 보도된 지 일주일만에 하느님 품에 안겨 주위를 못내 안타깝게 한 이순자(7월 24일자)씨나 골육종을 앓던 고진영 (7월 23일자)양은 삶을 접으면서도 이웃이 전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떠났다.
새성당 봉헌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사랑의 성채를 쌓을 수 있는 힘을 얻은 경우도 적잖았다. 지난 3월 5일자 본보를 통해 소개된 대전 판암동본당 공동체는 4년 동안 벌여오던 새 성전 건립공사의 손을 놓아야 할 처지였다.
보도가 나간 후 판암동본당에는 수천 만원에 이르는 은인들의 도움이 답지해 오는 2001년 초 준공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8월 13일자 지상을 통해 도움을 호소한 충주 봉방동본당의 경우 성전의 모든 실내외 공사가 마무리단계에 있고 조경 공사만 남겨두고 있다.
내년 5월쯤 봉헌식을 가질 예정이라는 봉방동본당 신자들은 「역시 하느님의 한 형제」라는 생각을 새롭게 했다고 말한다. 대구 신녕본당이 전해온 절박한 사연은 사랑의 메아리로 되돌아갔다.
97년부터 성당 재건축을 해오다 벽에 부닥쳤던 본당 신자들은 은인들이 모아온 사랑을 밑천으로 매듭묵주 만들기에 나서 오는 성탄에 새 성당에서 첫미사를 봉헌하는 감격을 맛보게 됐다.
이같은 나눔의 사연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흘러 넘치며 사랑으로, 감동의 눈물로 가난의 땅을 적시고 있다. 여름이 한창이던 지난 8월 본지에는 또 다른 딱한 사연이 와 닿았었다. 중증장애인 70여명을 보살피는 부산 마리아구호소에서 발노릇을 하던 차량이 망가져 IMF로 어렵던 살림살이가 더욱 어렵게 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고 채 몇 며칠이 되지 않아 구호소 마당에는 익명의 신자가 보내준 승합차 한 대가 들어섰다. 여기에 더해 수천 만원의 성금이 일주일 새 이들의 통장에 쌓여 뜨거운 사랑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셔 놓기도 했다.
그러나 만성신부전증으로 13년째 투병 중인 신용학(1월 30일자) 씨는 신장 기증자가 잇따랐으나 조직이 맞지 않아, 뇌종양을 선고받았던 오인숙(7월 2일자)양은 엄청난 수술비 때문에 아직 병상을 털고 일어서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자비로운 마음은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주신 것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러한 마음을 열어 주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자비로우신 하느님 2항)』참다운 나눔은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난 한햇동안 쏟아진 나눔의 결실들은 곧 작은 교회인「가정」을 살리는 일임과 동시에 교회 공동체를 살지게 하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인은 나눔을 통해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할 뿐 아니라 이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씨앗을 심어놓는 셈이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말씀을 품은 사람은 곧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임을 보여준 숨은 은인들의 손길, 그리고 발걸음을 내년에도, 그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 따뜻한 나눔의 손길, 그 이후…
● 문하은양 수술후 회복
“내년에 학교 가요”
『저 성당도 열심히 나가고 있어요』
은인들의 숨은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찾은 문하은(글라라·7)양은 요즘 매주 일요일이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명동성당을 찾는 재미가 솔솔하다.
지난 9월 신경아세포 종양으로 투병중이던 하은양의 보도가 나간 후 전국의 독자들이 보내욘 사랑은 하은양이 지난 10월 15일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퇴원해 수녀로서 살아갈 꿈을 키워 가는 밑거름이 됐다.
또래보다 1년 늦어버린 등굣길보다 앞으로 살아갈 삶에 의욕을 보이는 하은양의 어른스러움은 보이지 않는 사랑이 맺어준 결실이다.
12월 23일에는 병원에서 마련한 완치 축하파티에 참석해 예전의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돌아가 건강미를 선보이기도 한 하은양은 혈소판 수치가 완전히 제자리 찾기를 기다리는 중.
『IMF라 기대도 안했는데 그렇게 많이 도와주실 줄은 몰랐어요』
하은양의 어머니 백미자(젬마)씨는 얼굴 모르는 은인들을 향해 매일 두손을 모으고 있다고.
따뜻해지면 오빠 손을 잡고 나설 놀이동산과 새 친구를 만날 학교길이 기대된다는 하은양은 내년 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도와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늘 기도 드릴게요』
● 백운본당 수녀 모시기
“곧 수녀원 지어요”
신자수 200명 남짓, 강원도 산골 시골본당 신자들의 삶에도 숨은 은인들의 사랑은 희망의 물꼬를 텄다. 신자들이 한푼 두푼 모아 드여온 송아지 11마리로 수녀님 모시기를 시작한 원주교구 백운본당(본보 3월 26일자)의 사연이 보도된 후 전국에서는 나눔의 손길이 와 닿았다.
고령의 노인 신자들이 대부분인 본당 형편에 소 키우기에 나선 것만도 웬만한 결심이 아니고 선 힘든 일이었다.
여기에 경향 각지에서 보여준 은인들의 관심은 스스로 일어서야 겠다는 본당 공동체의 의지를 북돋워주었다. 이후 신자들이 한마이씩 한마리씩 끌고 온 개도 30마리를 넘어섰다.
가을걷이가 끝난 세밑, 농작물로 마련한 1000여 만원에다 내녀에 내다 팔 소값까지 합하면 어렵지만 30평 규모의 조립식 수녀원 건물을 마련할 수 있게된 백운본당은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다.
『내년 봄에는 신자들이 그렇게도 기다려온 수녀님을 모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운본당 신자들은 산골의 기적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를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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