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또」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한지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 노숙생활 하면서 무너진 건강은 거의 다 회복 됐고 이젠 조금이라도 베풀면서 살고싶을 따름이다. 작년 5월 서울역 노숙자들 틈에서 이곳 꽃동네로 실려왔던 신현철(알베르또·49)씨. 힘들었던 과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꽃동네 안에서 열심히 살기로 소문난 가족 가운데 한사람이다.
「소아마비, 가출청소년, 기술공, 봉제공장 사장, 노숙자…」. 신씨가 꽃동네에 들어오기까지 살아온 길은 마냥 어두운 것도, 평탄한 것도 아니었다. 2살 때 찾아온 소아마비는 신씨를 장애인으로 만들었고, 불우했던 가정환경은 그를 가출청소년으로 만들었다.
고향인 충북 증평에서 초등학교만 간신히 마치고 떠돌아 다녀야 했던 신씨는 17살 때 인천에서 봉제기술을 배웠다. 오랜 방황을 끝내고 봉제기술공으로 열심히 살았던 그는 작은 월급을 한푼씩 모았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꿈을 가지고 살아왔던 기술공 생활, 앞날이 어둡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20여년을 모아온 돈으로 93년에는 드디어 신씨도 작은 봉제공장을 하나 꾸려갈 수 있었다. 10명의 직원들과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며 시장에 옷을 납품해왔다. 빠듯하게 생활해가던 어느날, 납품했던 많은 양의 옷들이 잘못됐고 공장 운영에 위기가 닥쳐왔다.
몇 달간 적자는 계속됐고 몇 안되는 직원들 월급마저 줄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더 이상 직원들의 밥줄을 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신씨는 공장을 처분했다. 어렵게 살았지만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자며 한평생 살아왔던 신씨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미련없이 정리했다.
그런 후 신씨는 다른 공장으로 옮겨 생활했고 다시 일어서보겠다는 생각으로 남은 돈 170만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나 쉰 줄을 바라보는 신씨를 그 어디서도 쉽게 고용해주지 않았고 넉 달쯤 지나자 돈은 바닥이 났다.
용기를 잃지 않으려 마음을 다졌지만 결국 신씨가 마지막 찾은 곳은 서울역이었다. 97년 초였다. 당시 IMF 위기로 실직자가 무더기로 쏟아졌고 거리로 내몰린 노숙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 가진 것도 희망도 없는 신씨는 그들 사이에 끼여 노숙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기도 했단다. 가진 것이 없으니 뺏길 것도 없고,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이 힘겨웠던 지난날보다는 훨씬 편했다. 무료급식소가 늘어나 밥걱정은 없었고 잠자리도 견딜만 했다.
한해 두해 노숙생활이 몸에 젖어들면서 다시 일어서고 싶다는 생각은 저 멀리 떠난 지 오래였고 몸은 지쳐갔다. 술에 취해 다니다 넘어지는 바람에 멀쩡했던 한쪽 다리뼈가 삐끗했고 점점 다리가 부어올라 걸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갈 돈도 없었고 손을 쓸 수도 없었다. 고통을 이기려고 마시는 술은 점차 늘어갔고 그러면서 속병까지 얻어 폐인이 됐다.
그러다 매주 화요일이면 서울역에 나와 환자들을 찾던 꽃동네 병원장 야고보 수사의 눈에 띄었고 만취상태에 있던 신씨는 결국 앰불런스에 실려 꽃동네로 옮겨졌다.
다른 세상이었다.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한달 정도 치료를 받으면서 몸은 완쾌가 됐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세례를 받았고 흔하지 않으면서 학자이자 주교인 알베르또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택해 새롭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건강이 회복되면서 꽃동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봉제기술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목발에 의지하고 있는 그가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밥 먹고 기도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대부분 청소로 시간을 보냈다. 꽃동네 본동에서 요양원, 사제관까지 아침 저녁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청소를 했다.
조건없이 도움을 베풀어주는 그 모습에 신씨는 느낀 것이 많았고 조금이라도 갚아가자는 생각에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청소를 못하게되자 신씨는 보일러실 일을 자청했다. 초저녁, 새벽녘에 시간 맞춰 보일러를 틀어주는 일이다. 보일러실에 있는 동안 선물받은 책을 읽고 기도하며 지내는 시간이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신씨는 날마다 기도한다. 아직까지도 힘겹게 생활하는 노숙자들을 위해, 꽃동네 가족과 다른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신씨는 또 이곳까지 그를 데려온 야고보 수사와 병들고 가난에 지친 이들을 위해 큰집을 마련해준 오웅진 신부를 위한 기도도 빠뜨리지 않는다.
『술, 담배를 못하게되니까 처음에는 갑갑했어요. 그런데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젠 잘 살고싶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갈곳 없는 노숙자들이 용기잃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해요』 예수님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는 신씨는 그를 일으켜준 꽃동네와 조금씩 커가는 신앙을 잃지 않는 한 다시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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