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성격형성에 선천적인 요인(유전)이 중요한가 아니면, 후천적인 요인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성격 심리학에서 다루어지는 주요한 주제중의 하나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학자들은 인간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후천적인 요인보다는 선천적인 요인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은 무엇이 더 중요 하다라고 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삶에 선천적인 요인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중요하다라고 하더라도, 후천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이 결합되지 않을 때 선천적인 요인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한다면 한 인간의 삶에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 모두 중요하고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 될 때만이 성숙한 인격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어쩌면 신앙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은총과 인간의 협력인 실천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고 나아가 오늘 복음은 은총에 실천이 더해 질 때 어떤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흔히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으로 알려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를 많게 하신 기적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가 이 기적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요한 복음에서는 오늘 복음을 포함하여 모두 일곱가지 기적이 나오는데 하나의 공통점은 이것이 모두 「주간의 여섯째 날」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여섯째 날은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을 창조하시고 세상 창조사업을 마치신 날, 완성의 날이다. 때문에 여섯째 날의 의미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 하시는 '새로운 창조의 완성' 을 상징하고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인류」,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적의 현장인 혼인잔치. 오늘 1독서인 이사야서에도 나오듯 성서에서 혼인은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상징하고 있고, 신약에서도 예수님과 교회 사이의 관계를 혼인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혼인잔치는 때때로 메시아시대의 이루어질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할 때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포도주」. 이 포도주는 성서에서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고(아가서1,2)) 하느님의 축복(창세기 27, 28), 또는 예언서에 의하면 메시아 시대의 기쁨과 풍요로움의 상징으로 쓰여지고 있는 개념이다.
때문에 이러한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하면 오늘 복음은 단순히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있었던 사실보다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 더 나아가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메시지임을 쉽게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현실을 보여준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의 흥겨움이 반감되듯,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에 맺어진 계약도 사랑과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포도주가 떨어진 상태로 마치 포도주 없는 결혼 잔치처럼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현실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넘치게 하셨다는 것은 옛 구약을 완성하는 새 계약을 이루시고,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창조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메시아 시대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면서, 하느님과 백성사이의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도주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이 이 기적이 주는 의미인 것이다.
요한 복음사가가 수많은 기적 중에 이 기적을 첫 번째 기적으로 우리에게 소개하는 것도 시간적인 의미보다는 이러한 의미적인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통해서 함께 묵상해 보고 싶은 점은 이런 신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여한 인간의 협력 부분이다.
우리는 흔히 기적을 하느님의 일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 말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서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들을 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는데, 그 공통점은 기적의 이야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미약하지만 인간의 작은 협력, 마치 오늘 복음의 마리아의 역할이나 하인들의 역할도 필요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적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구원의 역사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출애굽 사건도, 에수님의 탄생도 하느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하신 것이 아니라, 모세라는 평범한 한 인간, 마리아라는 시골 처녀의 협력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주 미미하고 보잘것 없을 수도 있지만 인간의 협력이 하느님의 뜻과 만날 때 가능 하다는 것이다. 마치 오늘 기적도 예수님 능력+ 성모님의 간청+ 하인들의 협력의 합작품이듯 말이다.
때문에 감히 이런 말도 가능할 것이다. 기적은 하느님의 일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하느님의 한결같은 은총에 오늘의 우리의 협력이 더해질 때 기적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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