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봉 주교를 떠올리면 2년 전 안동교구서 마련한 칠순잔치에서 전통 한복에 갓까지 차려입고 교구민들에게 절을 받으며 어린 아이 마냥 즐거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54년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반평생을 살아오며 이제는 「거의」가 아니라 「완전한」한국인이 돼버린 두봉 주교.
은퇴 후 행주산성 아래 아담한 공소에 머물며 피정지도 등으로 바쁜 두봉 주교가 떠올리는 기억에 남는 사순절은 어릴 때 집에서 보낸 사순절이란다.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께로부터 사순절의 작은 희생에 대한 가르침을 많이 받았죠. 「예수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하고 싶은 걸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라」는 가르침 이었어요』
『그렇지만 사순절을 지내며 힘들었던 것보다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 열렸던 카니발이나 사순절 중간에 먹었던 「크레프」라는 음식, 힘든 사순시기를 지내고 부활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이 더 기억에 남네요』라며 웃는다. 크레프란 밀가루 전병 같은 빵에 버터나 쨈을 발라먹는, 유럽 사람들이 흔히 먹는 「붕어빵」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사순절은 우리보다 혹독하게 극기를 행하는 이슬람교도들의 단식을 따라해 본 기억. 아침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물 한 모금도 먹지 않은 채 한 달간 단식을 하는 것인데 오히려 굶고 나서 먹는 저녁이 더 맛있었단다.
그러나 두봉 주교는 사순절을 교회가 정해준 「즐거운 훈련시기」라며 부활을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극기를 체험하는 것이 결코 힘든 일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고마운 시기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순시기를 지내는 신자들에게 주교로서 당부하고 싶은 것은 『기도와 단식, 자선 이 세 가지를 실천하자』는 것이란다.
특히 두봉 주교는 이 세 가지가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작은 실천 으로 행해줄 것을 강조했다. 이를테면 십자가의 길이나 어려운 기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가정기도를 많이 해 줄 것.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아침 저녁기도만이라도 바치며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다.
또 간식을 줄인다든지 담배나 술을 끊는다든지 TV를 덜 본다든지 하는 작지만 필요한 희생도 함께 해 줄 것을 권했다. 자선 또한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친절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인사를 나누는 것 등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남을 생각해주는 실천의 하나로 행하자는 것이다.
두봉 주교는 『이렇게 하면 절대로 사순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아니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봉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53년 사제품을 받고 54년 한국 땅에 첫발을 디뎠다. 69년 안동 교구장에 임명됐으며 지난 90년 한국인 주교에게 교구장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4차례의 청원 끝에 사임하기까지 21년간 안동교구장으로 봉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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