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비하면 훨씬 덜 아프겠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고통과는 비교도 안되겠지, 그렇겠지…」뼈 속 깊이까지 파고든 암세포들이 죽도록 괴롭히지만 그녀는 참아낸다.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이겨내려 노력한다.
벌써 9년째 암과 끈질기게 싸우고 있는 연극인 이주실 (마리아·57)씨. 어제밤은 더 힘들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스무살 새내기들과 북적거리며 이틀을 보냈더니 온갖 병균들이 그녀의 몸속을 파고 들어와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 넣었다. 이번엔 정말 죽는구나 싶었는데 또다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감사기도와 함께 하루를 여는 이씨. 그녀가 올해 현도사회복지 대학교에 교수가 아닌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지난해 고배의 잔을 마시고 또다시 도전했다. 이 세상에서 그녀가 받았던 수많은 은혜를 하나도 남김없이 놓고 가기 위해서다.
그녀 또한 「복지」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며 복지사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진정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복지사가 되는데 작은 도움을 주고싶어서 용기를 냈다. 그래서 장학금이며 연구실, 집까지 마련해주겠다며 오라는 대학을 마다하고 신앙의 힘에 이끌려 현도사회복지대학을 택했다.
『사회복지는 문화 예술과 맥락을 같이하거든요. 「역할극」은 자신을 가장 잘 돌아볼 수 있게하죠. 또 미술이나 음악이 함께 있으면 복지를 훨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구요. 여기서 저도 배우고 제가 가진 것도 나누고 싶어요』
생사를 오가며 살아가는 그의 생활, 몇 십년 해온 베테랑 연기, 아동학을 전공한 그의 학력. 이 모든 것이 복지를 공부하는 그녀 자신은 물론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지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말기 암환자, 60을 바라 보는 느즈막한 나이의 이씨지만 생명과 고통의 참 의미를 몸소 보여주기에 대학교 신입생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그녀의 의지와는 달리 수시로 찾아드는 통증, 걷다가도 『욱』하고 올라오는 구토증세 때문에 서울서 통학하는 일,
일주일 내내 빡빡하게 짜여진 학사 일정을 잘 이겨낼 지 조금은 걱정이 된다. 벌써 오리엔테이션 첫날도 병마와 힘겹게 싸워야했고 다녀온 후에도 몸서리칠 그놈의 병균들과 씨름을 했기 때문이다.
뼈를 깎는 아픔을 뒤로하고 환한 웃음을 짓는 이씨. 누가 봐도 가짜 암환자 같기만한 그녀가 철저하게 고통을 이겨내고 있기에 한쪽 가슴이 없다는 것, 조금 피곤해 보이는 눈빛 말고는 말기 암환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보다 덜한 고통이기에 그녀는 밤새도록 온방을 뒹굴며 까무라치는 아픔, 역겨움을 감기환자의 것쯤으로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도 틈나는 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을 나서는 이씨. 30년간 해온 꽃동네 봉사도 계속하고 싶고 더 아픈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연극무대도 만들고 싶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낭독봉사도 계속했으면 좋겠고….
사형선고를 받은지 오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싶다는 그 의지가 몰핀이 되어 오늘까지 그녀를 버티게 했다. 삶에 대한 미련은 오래 전에 버렸지만 하루 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놓고 갈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젠 약값도 없지만 강연해서 생기는 돈벌이를 모두 다른 이들을 위해 풀어놓는 이씨.
오늘 겪는 이 아픔과 고통, 눈물과도 같은 웃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이 땅이 아닌 하늘에서의 부활이 그녀를 기다린다는 큰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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