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한파 때 사업이 망하고 건강마저 나빠진 신자 김모씨(베드로·45). 그는 우연한 기회에 주위 사람의 권유로 기 수련을 시작하게 됐다. 김씨는 단지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수련에 참가했다. 하지만 얼마후 그는 수련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점차 영적세계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기 수련 단체가 하나의 신흥종교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신앙인의 양심으로 계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 기 수련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수련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교회내 많은 신자들도 건강상의 목적으로 이 운동을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교회내에서 기 수련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강우일 주교가 기 수련 문화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킬 취지로 교구내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공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들은 기 수련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무슨 이유로 가톨릭 교회가 이 운동에 대한 성찰과 식별을 요청하고 나섰는지 조명해본다.
어떻게 파급됐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에서 197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뉴에이지 물결이나 일본에서 정신세계라는 이름으로 파급되고 있는 수련운동 및 심신종교운동이 국내에서는 기공, 단전운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 수련 문화는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민주화가 어느정도 정착되고 절대빈곤의 문제가 해소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즉 사람들의 관심이 사회보다는 자기자신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평화 그리고 안녕에 집중되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건강과 심리적인 안정, 스트레스 등을 해소시켜주는 초월명상, 기공, 단전과 같은 여러 수련 사업들이 관심을 끌게됐다.
가톨릭 신앙과 무엇이 상치되나
이러한 운동 방법들이 단지 육체적 건강으로 지속된다면 가톨릭 신앙과 전혀 상치되거나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수련 가운데는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거나 영적 세계와의 교통 또는 인간에게 내재된 초월적 능력을 발휘시킴으로써, 인간과 신을 동격화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교회내 종교학자나 사회학자들 일부는 이런 운동에 내재돼 있는 종교적, 영성적 특성에 주목하면서 이것을 신 영성 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 수련으로 인한 문제점
이 운동은 자칫 모든 관심을 개인에게로 집중시킬 수 있다. 즉 신앙의 개인화를 촉발, 교계제도나 미사, 성사와 같은 전례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의 영적 추구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신앙의 목적을 현세적 행복에 둠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교회의 사명을 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신앙의 감각화를 촉발시킬 수 있다. 기 수련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평화를 강조, 오랜 역사를 통해 쌓여온 교리나 신학과 같은 교회 지적 전통 보다는 육체적, 정신적 변화와 같은 감각적인 측면에 치중하게 한다. 특히 신앙생활의 초점을 신비주의에 두게돼 감성주의나 열광주의를 조장하고 교리나 신학 등 교회의 전통에 대한 무관심에 빠져들게 한다.
아울러 구원의 의미를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안녕에 둠으로써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손상시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과 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운동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면 그리스도 신앙을 반사회적, 반역사적, 반문화적, 반공동체적, 반성사적으로 유도하게 되고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과 교회의 사명을 심히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욱이 기를 우주만물의 근원으로 간주해 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기체험을 성령체험과 동일시 하는 경우. 그리고 모든 물체는 에너지로서의 기를 갖고 있어 이 물체가 소멸되더라도 다른 물체에 전이돼 새로운 생명으로 연결된다는 일종의 환생론을 주장한다면 그리스도교와는 일치할 수가 없다.
국내 기수련 문화의 행태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수많은 기공, 단전 운동 단체 가운데는 심신단련이나 건강 치료를 위한 집단이 있는가 하면, 기를 앞세운 새로운 형태의 신흥종교 단체들도 분명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얼마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천존회의 경우 그 교주가 신도들에게 맞보증을 서게해 1500억원을 사취, 10년형의 실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천존회는 천도선법이란 기공훈련과 천수(天手)라는 기부여를 통한 치료방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노길명 교수는 기공, 단전 등과 같은 방법을 사용할 때에는 그 목적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그것이 수반하는 결과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교회의 대책과 전망
그동안 가톨릭 교회는 오랜 역사적 체험과 수많은 종교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교리나 신학 그리고 제도화된 전례와 성사를 강조하는 경향을 띠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신자들의 경우 어떤 영적 세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자,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면서도 영적 체험이나 영적 세계와 관련된 욕구를 기공, 단전 등으로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내 전문가들은 이러한 운동을 소위 산업사회로부터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는 현대적 경향의 하나로 보고 있다. 지금은 많이 퇴색됐지만 포스터 모더니즘의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이는 단지 한국 사회의 현상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세계 교회 또한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교황청에서 나오는 많은 교서들이나 시노두스 보고서에 그리스도교와 동양 정신문화와의 관계를 언급한 것도 이 점을 우려해서다.
가톨릭교회는 2000년의 역사 중 많은 수도 단체나 개인 수도자들을 통해 영성 수련 방법을 개발해왔다. 아울러 하느님과 만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체득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성 수련 방법들을 한국 교회가 현대인들의 생활에 맞는 방법으로 신자들에게 보급시킬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교리와 전례성사를 강조하면서도, 기도나 기타 영성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신자들에게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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