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다들 차분했어요. 그간 돌봐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꼭 전해달라는 그 아이의 눈에서는 하느님나라가 보이는 듯 했어요』
10년 넘게 사형수들을 돌보며 사형수의 어머니로 불리는 조성애(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수녀, 지난 97년 23명의 목숨이 형장에서 사라지던 순간을 떠올리던 조 수녀는 이내 목이 메이는 모양이었다. 칠순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다니며 사형수의 벗이 되어온 조 수녀는 『이제 막 아름답게 피려는 생명의 싹이 싹둑 잘리는 그 아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를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매주 한번 교도소를 찾을 때면 천진한 아이처럼 자신을 따르는 사형수들, 조 수녀에게 사형수들은 이미 흉악범이 아닌 하느님을 알아 가는 어린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기쁨을 맛보는 이들에게서 새로운 삶의 기회를 더 이상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억울한 죽음은 없었을까
『사형제도는 현재 상황에서 범죄예방의 효과 등으로 불가피하므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96년 11월 사형제도의 위헌여부를 가려달라는 한 사형수의 헌법소원에 대해 내린 판결의 요지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에 대해 사형을 피할 수 없다는 범죄예방적 효과가 주요한 논리였다. 사형제도가 도입된 1948년 이후 지금까지 사법제도를 통해 사형이 확정된 사람은 10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979명. 매년 19명 정도에게 사형이 집행된 셈이다.
전쟁 직후인 54년에는 사상 최대인 68명이처형됐고, 긴급조치시대의 절정으로 일컬어지는 74년에는 58명이 사형집행됐다.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반정부운동이 격렬했던 82년에는 23명이 형장에서 사라졌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90년에는 82년이래 최대인 14명이 사형집행을 당했고, 91년과 92년 두해 동안에는 모두 45명이 사형이 확정됐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지존파 사건 등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94년 15명, 95년 19명 등 모두 34명의 사형수가 극형에 처해졌다.
이렇게 형장에서 사라진 이들 가운데는 국가보안법, 반공법, 비상조치령 등으로 집행된 공안사범이 340여명으로 단연 최대다. 살인죄가 320여명, 강도살인이 280여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같이 사형집행은 사회상을 반영한다. 시대의 의식과 사회구조를 철저히 따르는 셈이다. 달리 말해 이는 「사형제도」를 비롯한 구조악에서 인간이 해방될 때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사형제도의 국제 추세
유엔은 지난 1989년 12월 총회에서 전세계 국가가 사형폐지를 위한 모든 조처를 강구하도록 하는 국제인권규약(B규약)의 제2선택의정서를 채택한 바 있다. 또 97년에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사형폐지 권고결의안을 내면서 사형폐지는 국제사회에서 꾸준한 추세로 자리잡아왔다. 이에 앞서 국제사면위원회는 1977년 12월 사형제도를 「극도로 가혹하고 비인도적이며 모욕적인 형벌임과 동시에 생명권을 침해하는 제도」로 규정하고 사형제도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스톡홀름 선언」을 한 바 있다.
1999년 말 현재 전세계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는 89개, 사실상 폐지한 나라는 106개국이며 해마다 2, 3개 나라가 사형을 폐지하고 있는 추세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는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와 캐나다 뉴질랜드 등 모두 54개국이다. 그리고 30여개국에서는 제도상으로는 사형이 존재하지만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도의 기능이 정지됐다. 이중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헝가리와 같이 정부나 국회의 법률개정이 아닌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도 있다.
‘사형 없애자’크게 늘어
우리 국민들은 아직 사형제도의 「존속」을 더 지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견해가 크게 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99년 12월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형제도와 범죄문제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50%)이 「반대」(43%)보다 약간 많았다. 하지만 지난 94년의 같은 조사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이 70%, 「반대」가 20%였던 것과 비교하면,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국민들의 범죄에 대한 시각은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9년 10월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죄인을 감옥에 보내는 목적」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란 응답이 53%로 전세계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전세계 평균은 32%). 반면 「교화시키기 위해서」와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각각 19%, 15%에 그쳤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 사법제도에서 사형은 형법, 형사소송법, 행형법, 군형법 등 32개 법에 관련조항이 있다. 사형을 법정형량으로 정하고 있는 범죄는 무려 89가지나 된다. 사형제도가 있지만 법정형량에 사형이 규정돼있는 범죄가 5∼6개인 미국과 일본 등에 비교해보면 과도하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 막아
지난 1999년 1월 미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인트루이스에 운집한 10만여명의 군중들에게 『가톨릭은 인간의 생명과 개인의 존엄성 보호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야 한다』며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큰 악을 저지른 사람조차도 인간생명의 존엄성은 지켜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했다.
일선 사목자들은 『아무리 잔인하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파괴했더라도 사형제도는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기 때문에 비인간적』이라고 강조한다.
조성애 수녀는 『범죄자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돌아오라는 부르심을 받는 피조물이며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면서 『보복과 복수의 응보적 차원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을 통해 범죄자들이 죄를 기워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한국교회는 그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를 통해 사형제도가 인간존엄성의 핵심인 생명권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결정에 의해 박탈하는 비문명적인 제도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지난해에는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를 중심으로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형폐지 입법청원활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사형제도 유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범죄 예방 차원에서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흉악범죄의 발생이 「개인의 악」이 아니라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생각은 논리적 문제성을 지니고 있다. 또 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어떤 근거있는 통계도 없다.
교정사목 관계자들은 사형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공동체적 책임을 방기하고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는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회학자들도 사회적 병리 현상과 구조적 모순을 치유할 때 범죄의 원천적 예방이 가능하다는데 대체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형집행되는 사람이 흑인 등 소수민족이거나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미국 남부에서 사형집행률이 높다는 점은 사회적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범죄에는 응당 형벌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형벌은 「처벌」이 아닌 「교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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