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말한 바와 같이 양심은 인간행위의 도덕성에 대해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에, 소위 양심적 판단이라도 객관적으로는 얼마든지 그릇된 판단일 수 있다. 그래서 윤리신학자들은 올바른 양심(C.vera)과 그릇된 양심(C.enronea)을 구별하고 혼돈스러운 양심, 세심병적인 양심, 풀어진 양심 등을 그릇된 양심이라 한다.
양심의 종류나 차이점을 논하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성숙한 신앙인들의 구체적인 생활에 필요한 상식적인 양심에 대하여 더 생각해 보자.
1) 양심은 인간행위의 도덕성의 가까운 기준이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려할 때에, 그 행위가 단순한 기계적 동작이 아니고 유의적(有意的) 행동이라면 그 행동에는 반드시 도덕적 평가가 따르기 마련이므로 일단 양심적 판단을 하면서 또는 하고나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양심이 금하는 것을 하지말고 양심이 명하는 바를 해야 된다.
2) 그러나 개인의 양심이 개인 행위의 가까운 기준은 되지만 개인 행위의 도덕성의 결정적 최후의 기준은 아니다. 이 결정적 최종 기준은 하느님의 뜻이 계시된 하느님의 계명이다. 따라서 개인의 양심이 하느님의 계명을 제대로 알려주는 한도내에서 가까운 기준이 되는 것이지 덮어놓고 개인의 양심에만 맞으면 무엇이나 다 좋은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대로 개인의 양심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윤리적으로 착하게 살고자 하는 신앙인은 자주 자기의 양심을 성찰하여 과연 하느님의 법을 잘 반영하는 양심인지, 인간적 체면과 이기적 욕망으로 또는 거듭된 악한 습관으로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때묻은 거울이 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양심 형성(良心形成)이라 한다. 실제로 현명한 영성지도자들은 열심한 신앙인에게 양심을 지키라 하지 않고 양심형성에 힘쓰라고 권고한다.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 것이다.
4) 양심형성을 위하여 신앙인은 자기의 지적(知的)수준에 맞는 신앙교리와 윤리법칙과 계명준수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마음의 유연성을 기르고 특히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습관성 결함을 시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5) 이러한 양심형성의 노력은 모든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특히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 학생에 대한 선생, 젊은이에 대한 어른들, 일반신자에 대한 성직자들은 더 큰 양심형성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무릇 모든 지도자들의 사소한 오판(誤判)이 피지도자들에게 막심한 손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신앙인의 상식으로 양심을 말하고 있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나 타인의 개인적 양심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양심을 지켜서 구원되지 않고 은총으로 하느님의 법을 따름으로써 구원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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