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희년을 지낸 지난해 5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과학적 탐구에 있어서 신앙은 단지 윤리적 원칙들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 과학자들의 모든 연구에 총체적인 의미를 부여해준다고 말했다.
이날은 가톨릭 교회가 과학자들의 대희년으로 지내는 날이었다.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신앙은 피조물의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과학자들이 창조주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세계의 과학자들 앞에서 교황은 분명하게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교회는 과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견을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 포용하며 인간은 오히려 과학적 발견들을 통해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된다고 교황은 잘라 말했다.
역사를 통해 해묵은 오해 중의 하나가 과학과 신앙은 적대적이라는 선입견이다. 신앙의 진리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치명상을 입고 있으며 과학의 발전이 극에 달하면 결국 신앙은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오해이다. 교회는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그저 오해일 뿐이며 신앙 없는 과학은 불구, 과학 없는 신앙은 맹목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으며 둘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을 잘 알고 있다.
과학 발전의 토대는 신앙
실제로 과학의 발달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오늘날 과학의 토대가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에서 멘델까지, 아인쉬타인에서 파스칼까지, 그리고 갈릴레오에서 마르코니까지 교회와 과학의 역사는 그리스도교 안에 과학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교회는 때때로 과학을 억누르기도 했다. 때문에 앞서 말한 과학자들의 대희년 행사에서도 신학에서 고고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이 자리한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의 정당한 독립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가지기도 했다는 취지의 용서 청원도 있었다.
오만한 인간 정신은 과학을 통해 인간 존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세계 제2차대전을 통해 엄청난 비극을 웅변한 핵은 냉전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최근 들어 깊은 우려를 자아내는 생명 과학 분야의 맹목성은 그 위험성에 대한 숱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욱 심화될 것이 예상된다.
역사가들에 의해 자주 왜곡되거나 과장된, 그리스도교의 과학에 대한 잘못된 태도, 그리고 핵이든 생명공학이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려가는 과학의 맹목적 발전으로 인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종교가 더 이상 과학에 대해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신앙이 과학자들의 창의적인 연구를 방해하는 극보수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비난의 가장 유용한 도구가 바로 갈릴레오 사건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자연과학의 발달에 결정적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적으로 오해됐다. 근대에 접어들어 신의 영역으로 간주됐던 자연의 신비들이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되기 시작하면서 이제 인간은 과학이 종교와 이별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 과학은 더 이상 신앙, 윤리, 하느님과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과학과 신앙의 만남
그러면 이제 과학과 신앙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는가? 종교의 영역을 대치한 것으로 보이는 과학은 신앙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지난 세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확실하고 정확한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자들은 너나 없이 과학의 한계를 인정한다. 과학은 제한된 지식이고 그 합리성과 확실성은 제한된 영역 안에서 성립한다. 그래서 러쎌은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수용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과학과 신앙의 이분법적 구분을 부정하고 과학과 신앙이라는 두 영역의 유일한 근원이 바로 하느님임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야 한다. 편협한 합리주의를 넘어서 종교적 물음에 귀를 기울일 때 과학은 물질세계에만 갇혀있지 않을 것이며 종교가 그 원래적인 비과학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수용해야 한다.
그럴 때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핵전의 위협, 환경 파괴 문제, 생명 공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 훼손 등 숱한 도전들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 과학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 역시 신앙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 폴 푸파드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신앙이 때로 드러내는 많은 과오와 미신을 정화하고 역으로 신앙은 과학이 물질주의의 우상으로부터 자신을 정화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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