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간의 관계들은 다른 신앙인들에게 열려 있고 기꺼이 들으려는 마음, 그리고 그들과의 차이점들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고 이해하려는 맥락에서 가장 발전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이 필수적인 것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아시아 교회」31항)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개최된 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가 폐막된 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인도를 방문해 발표한 권고 「아시아 교회」는 특별히 아시아 대륙에서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986년 10월 27일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 아씨시에서 있었던 가톨릭 교회와 세상의 타종교 대표자들의 기념비적인 만남은 『남녀 종교인들이 자신의 전통들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함께 기도에 참여하고 평화와 인류의 선을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실제로 이 모임 후 가톨릭 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전세계의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하는 국제적인 회의들을 마련했다. 교황은 이미 지난 1994년 발표한 대희년 준비 회칙 「제삼천년기」에서『새로운 천년기의 도래는 종교간 대화와 세계의 큰 종교들의 지도자들과 만남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누차 강조했었다.
가톨릭교회의 종교간 대화 노력은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분명하고 명백하게 표명됐다. 교회 안에 일치위원회가 구성되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기구들이 설립되면서 외부와의 대화를 통한 인류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길에 나섰다.
새천년 여전한 종교 분쟁
모든 종교는 생명을 존중하고 이웃과 신에 대한 사랑을 설파한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생명을 증진하는 종교를 오히려 살육과 무력 충돌의 도구로 삼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비극이다.
세계가 양분돼 있던 냉전시대가 종식된 후 인류는 더 이상 지구상에 전쟁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촌은 냉전 때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국지적인 무력충돌로 가득하다. 특히 오늘날의 국제 분쟁들은 인종과 종교에 그 원인을 갖고 있어 더욱 그 뿌리가 깊다.
지난해에도 전세계의 종교 분쟁과 그로 인해 희생되는 무죄한 이들의 비극이 끊이지 않았다. 나이지리아, 수단, 에디오피아, 콩고, 시에라 레온, 기니아, 앙골라 등 아프리카의 크고 작은 무력 충돌, 필리핀의 정부군과 반군의 오랜 대치 등.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전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 그리고 그리스도교간의 빈발하는 분쟁들은 민족 감정, 인종 차이 등과 함께 뒤섞여 아시아 지역의 분쟁을 더욱 복잡하고 잦아지게 만들고 있다. 결국 미래의 지구촌은 만약 종교인들이 서로에 대해 관용과 포용의 자세를 가지지 않는다면 결코 희망적으로 전망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국의 종교간 대화
한국 종교인들이 공동의 이해를 가지고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일제치하인 3.1운동 때이며 이후 60년대에 처음으로 6개 종단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70년대와 80년대 각종 사회운동과 민주화의 현장에서 종교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만나게 됐고 이러한 연대 속에서 사회 정의 구현운동을 펼쳤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종교간 대화 모임이 더욱 정례화되고 청년, 평신도 등의 참여가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타종교에 대한 몰이해와 적대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개종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아 종교간 대화 자체를 불필요한, 나아가 사악한 것으로까지 여기는 자세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다.
또 수십년에 이른 종교간 대화가 과연 얼마나 확산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중심으로 모인 자리에서 더 나아가 영성 깊은 종교적 대화로 깊이 있게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종교 지도자나 학자들을 제외 하고는 사실상 대중적인 종교인들의 대화의 만남이 극히 제한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는 바로 이웃에 다른 종교인 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들 타종교인들이 서로 만나 종교적 이야기를 나누고 종교적 체험을 나눌 수 있을 때 참된 종교간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종교간 대화의 장애
종교간의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들은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장애는 물론 자신의 신조 안에 완전히 폐쇄된 자세이다. 이런 부정적인 입장은 종교간의 대화에 대한 다양한 오해로 더욱 가중된다.
이 오해 중의 하나는 『종교간의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종교 안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우상 숭배라는 생각이다. 종교간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커다란 장애의 하나이다. 종교는 신앙의 영역이며 그 신앙은 다른 신앙 체계와 이론적인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종교간 대화에는 자기 신앙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 종교간의 대화가 신앙의 정체성을 변질시키는 혼합주의로 전락하게 마련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종교간의 대화가 상대방을 개종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상당한 위험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톨릭교회에서도 이에 대해 우려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종교간의 대화는 자기 종교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종교간의 대화가 올바르게 진행되는 곳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이 더욱 풍요로워지며 그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아시아 교회'에서 "교회는 모든 차원에서 다른 종교들과 만나고 협력하는 이 정신을 보존하고 증진하고자 계속해서 일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오늘날 모든 종교들은 공통의 도전, 즉 세속화된 인류 문명의 도전을 공동의 과제로 안고 있다. 미래를 다소 비관적으로 바라 보는 이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주도적인 힘을 상실 하고 개인화된 종교가 세속화, 무조건적인 합리주의, 세계화, 과학의 맹목적인 발전 등을 과연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를 의심하고 있다.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인류의 공동선을 향해 개방적인 자세로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