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죽음은 망각이다. 하지만 망각에 묻히지 않는 죽음도 있다. 대개 살아있는 동안 생각과 말과 행위로써…(중략) 나와 남 사이의 애틋한 삶을, 사회와 우주 자연 사이의 풋풋한 생명의 영역을 넓히고 깊이 있게 하고 가깝게 하고 맑게 정화하고 사랑으로 가득 채우려고 애쓴 사람의 죽음이 그렇다』(「가짐 없는 큰 자유」 중 김지하의 발문)
사람이 죽어서 남기는 것은 이름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이의 삶은 오랜 시간 세상과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빈민운동가 제정구 전 의원의 유고집 「가짐 없는 큰 자유(학고재)」와 마해송 선생의 자서전격 산문집 「아름다운 새벽(문학과 지성사)」. 이 두 권의 책은 한 인간의 진실한 삶의 궤적이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이 따를 길을 비추어줌을 가르치고 있다.
「가짐 없는 큰 자유」는 제정구(1944~1999) 전의원의 추모 1주기를 맞아 「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이 지난 97년 고인이 펴낸 「신부와 벽돌공(비전 21)」을 고치고 보완해 다시 발간한 책. 청계천 시절부터 시흥 공동체 생활에 이르기까지 동고동락한 정일우 신부와 박재천(천주교도시빈민위원회 회원), 시인 김지하씨의 발문 또한 덧붙였다.
지난 9일에는 동생 제정원 신부, 정일우 신부와 지인들이 함께한 추모식 및 출판기념회가 개최되기도. 소위 명문대 출신인 그가 야학과 넝마주이, 엿장수와 단무지 행상으로 판자촌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며 강제철거에 맞선 투쟁, 집단 이주, 새 공동체인 시흥의 복음자리, 한독마을, 목화 마을을 건설하기까지의 과정은 자본의 가치에 깊이 물들어버린 우리들에게 공동체 생활의 의미와 함께 「가짐 없는」 삶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일생을 올곧게 한 길로 갈 수 있게끔 그를 지탱했던 신념은 다름 아닌 신앙.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자신의 삶터와 일터에서 구도의 길을 걷던 종교인으로 그를 회상한다.
『공동체 생활은 편한 것보다 불편한 게 많고 짜증나고 화나는 일이 더 많은 생활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기쁨을 얻기도 한다. 바로 그것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며 자신을 버리고 받는 아픔이 오히려 보람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버림으로써 하느님이 라는 블랙홀에 끌려가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간다』
한국 아동문학 정립에 큰 공헌을 한 마해송(1905~1966) 선생의 산문집 「아름다운 새벽」은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한 자서전 격인 글로 35년만에 재발간됐다.
굿을 구경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갖가지 인생여정을 엮어내며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는 모습으로 끝맺 음한다.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 작가였고 일제하에서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작품을 많이 썼던 마해송 선생은 「자기 절제의 글의 학」으로 후학들의 본보기가 됐다.
문학평론가 고 김현은 『신문화 이후 몇 안되게 손꼽히는 간결하고 아름답고 힘있는 문장』이라고 선생의 글을 평한 바 있다.
고인의 아들인 시인 마종기씨는 책머리에서 『언제나 옳고 바르게, 단 비굴하지 않고 예의바르게 살려고 평생을 노력하신 그 고집이 느껴져서 새삼 아버님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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