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세례명을 바오로로 할 껄 그랬어
운보 김기창(베드로.88세) 선생이 그림에 있어서는 제자지만 신앙선배인 김정자(마리스텔라) 화백을 보자 넌지시 물어왔단다.
왜, 베드로가 맘에 안 드세요?
아니, 그건 아닌데, 바오로는 학자잖아, 학자가 좋을 것 같아
그래도 베드로가 좋아요.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가졌잖아요
그래, 그렇지? 나도 베드로가 좋다
제자의 말에 얼른 동조하며 웃었던, 그렇게 어린아이와도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운보를 만나러 충북 청원군 북일면 운보의 집에 들어섰을 때 여전히 그는 빨간 양말과 하얀 고무신을 신고 있었고 매서운 눈빛도 예전과 다름없이 빛났다.
그러나 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심장병, 패혈증 등으로 생사를 넘나들면서 그의 육신은 정말 많이 야위고 초췌해 졌다. 100kg을 넘는 거구였던 운보 선생이 맞는가 싶다.
투병 중에도 7∼8번 죽을 고비를 넘기셨어요. 그때마다 다시 기적처럼 깨어나시고 일어나셨습니다. 정말 오뚜기 같은 분이지요
장남 김완씨의 말대로 지난해 6월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는 모두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장례까지 준비했었다.
그러나 운보는 다시 일어났다.
아들은 청각 장애를 극복한 힘과 가슴 속 깊은 곳의 열정이 아버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같다지만 김정자 화백은 그 모든 것의 원천은 바로 신앙이라며 죽음 직전에서도 신부님들이 병자성사를 주시고 나면 다시 깨어나시곤 했다고 전한다.
늘 나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나를 베드로로 불러 주셨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것입니다고 기도했던 운보는 비록 육신의 소리는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인이었지만 베드로로 불러 주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꿈에 본 성당과 수녀들을 그림으로 그린 후 막내딸을 낳았고 그 딸이 수녀가 되고 자신도 천국의 열쇠를 갖게 된 운보. 그토록 아꼈던 이 사연많은 그림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를 교황에게 선뜻 선물했던 그가 생애 마지막이 될 지 모를 전시회를 갖고 있다.
바보 예술 88년이란 제목처럼 그의 미수를 기념한 이번 특별전은 7월 5일부터 8월 15일까지 갤러리 현대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전작도록에 수록된 4천여점의 작품중에서 엄선한 88점이 선보인다.
조선시대 민화의 정취와 익살을 대담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바보산수는 물론 청록 산수, 초창기 세필화에서 대걸레를 이용한 대작에 이르기까지 구상과 추상을 오가며 한국화의 변화와 발전에 이바지 했던 운보의 거인다운 면모를 다시금 확인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정청(靜聽)1934, 일본에 소장 군마도(1969.1986, 개인소장)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시된다. 또 예수의 일생 연작 중 최후의 만찬 예루살렘의 입성 십자가에 못박힘 등 그의 신앙이 담긴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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