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뇌리 속에 남아 있다가 하마터면 잊혀질 뻔했던 영화「컵」은 실제 환생 라마라고 불리고 티벳인 사이에서는 대단히 존경을 받는 승려인 키엔츠 노부 감독이 만든 최초로 티벳어로 된 장편영화라고 해서 더 관심을 끌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실제 수도승들이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히말라야 사원에까지 불어닥친 월드컵 열풍을 주제로 삼아 전통과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대한 화해와 세대와 문화간의 화합과 조화를 담아내고 있다.
또한 중국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롭게 수행에 열중할 수 있는 인도로 늘 탈출을 꿈꾸는 티벳인들의 고단하고 슬픈 삶이 무정형의 자연과 더불어 놀랄 만큼 초연하게 그려지고 있어 코미디를 기대하고 간 나를 여지없이 무너지게 하였다.
인도에 있는 티벳 사원이라는 첫 장면부터가 그랬다. 두고 온 고향과 전통에 대한 향수로 궤짝의 짐을 풀었다가 다시 싸는 행위를 반복하는 큰스님은 자신은 해보지도 않은 갈등과 유혹을 겪는 젊은 제자들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브라질의 축구선수 호나우두를 좋아하는 14살의 오기엔이 가파른 언덕길을 질주하면서 위성 안테나와 교차되는 장면, 코카콜라 캔으로 축구를 하는 장면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수도원과 젊은 수도승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큰스님에게는 컵 하나를 두고 전쟁을 하는 두 나라가 이상하고 그것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하는 전쟁에 열광하는 젊은 수도승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방향을 선회하고, 수도원에 TV를 빌려 오기 위해 오기엔은 돈이 모자라자 며칠 전 티벳을 탈출한 어린 니마의 엄마의 유품인 시계까지 저당 잡힌다.
니마가 계속 시계를 돌려달라고 하자 좋아하는 호나우두가 나오는 경기도 마다하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처분하려는 오기엔, 그것을 갚아주는 게코 스님의 무뚝뚝함 속에 스며 있는 정, 그리고 정전되어 축구 경기를 볼 수 없게 되자 등장하는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악몽에 시달리는 남자 이야기와 끝을 몰라도 되는 그림자극은 낮에 무수히 보았던 푸른 산맥과 잘 익은 누런 벼 사이로 따사롭게 내려 쬐는 햇볕처럼 여유 있고 꾸밈이 없는 티벳인들의 무심함을 엿볼 수 있다.
큰스님의 마지막 설법은 설교라고 하기엔 너무 가슴 저민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왜 불행해 하느냐? 그리고 만약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면, 불행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많은 적을 다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 안에 미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모든 적을 이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이 화해를 이루는 것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 거기에 당신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원수들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해 주기 바라는 것을 그대로 그들에게 해 주시오』
그들은 2002년 월드컵을 기다린다는데 우린 달라이 라마를 마중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음이 안타깝다.
문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