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복음화라고 할 때 과연 문화는 무엇을 지칭하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문화를 논할 때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의 대표적 분류를 지칭 할 것이다.
즉 교회 문화는 좁게 말하면 성시(聖詩)와 성극(聖劇)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 성화와 조각품, 성전 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성 미술, 그리고 거룩한 전례의 필수적인 부분인 성음악을 지칭한다.
하지만 복음적 가치,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정신이 역사와 사회 안에 현현된 모든 것을 지칭한다는 의미에서 교회 문화, 가톨릭 문화는 우리 일상 삶의 모든 것, 즉 정치, 경제, 생활, 학문, 노동, 휴식, 교육, 레크리에이션 등을 모두 포괄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문화활동」을 거론할 때 신자 대중들과 가장 밀접하게 호흡하는 분야는 바로 대중문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교회 문화라는 폐쇄적인 틀 안에 갇힌다면 세속적이고 감각적이며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대중문화는 일견 가톨릭 교회가 창조하고 향유해야 할 종교 문화의 범주에서 배척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현대인들 어느 누구가 과학문명의 산물인 첨단 대중 매체의 강력한 영향력에서 제외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대중 매체와 이를 수단으로 하는 대중 문화의 복음화는 문화의 복음화라는 소명에서 볼 때 어쩌면 교회가 가장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복음화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판단도 가능하다.
영화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가장 웅장하게 증거한 매체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20세기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영상의 시대」를 예언했다.
하지만 교회는 영화라는 매체를 과소평가했다. 서구를 중심으로 성서적 상상력이 자주 영화의 주제와 소재가 되곤 했지만 한국에서 영화는 전혀 복음화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물론 몇몇 주요한 시기에 순교자 등을 주제로 한 몇편의 영화들이 만들어졌으나 대부분 기념용이거나 행사 홍보용에 그쳤다. 그나마 종교 영화의 중요성에 주목한 일부 출판사가 예술적인 종교영화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으나 한국 사회의 움직이는 신앙이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은 전무하다.
영화보다 종교적인 전통의 뿌리가 깊은 연극의 경우에도 이같은 현실은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교회 문화 속의 연극이란 성탄절이나 부활절 때 각 성당에서 아마추어들이 펼치는 촌극 정도가 전부이다.
아니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극단이 '신의 아그네스' 라든가 하는, 신앙의 깊이보다는 호기심의 대상일 수 있는 작품들을 센세이셔널하게 무대에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한때 대학가와 청년들을 중심으로 마당극, 탈춤, 총체극 등의 형식을 빌어 성서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시도들이 있기는 했다. TV나 라디오 매체 등을 통한 복음화의 노력은 일단 가톨릭교회가 기반 시설을 소유함으로써 어느 정도 달성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앞으로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 더욱이 고도의 상업성과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흥미로운 영상을 쏟아내는 상업매체들 안에서 복음을 얼마나 설득력 있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대중매체 안에서 문화는 하나의 상품으로 제시된다. 교회가 대중매체를 힘있게 껴안고 그를 통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의와 고귀한 가치에 못지 않은 상품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결국 재원의 투자와 그 효과적인 운용, 전문가의 활용 등이 관건이 될 것이다. 이는 곧 대중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앞서야 하는 문제이며 고도의 전문성을 겸비해야 하는 문제이다.
문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