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불쑥 찾아온 친구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왔니?』그 친구가 대답합니다. 『그냥 왔어』전화도 마찬가집니다. 불쑥 전화를 한 친구가 말합니다. 『그냥 걸었어』(마음의 빈 자리 中에서) 감성 그 자체인 작가 한수산이 펴낸 산문집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해냄 刊). 이 책에서 우리는 아주 자주 부닥치는 일상에서 찾아낸 해묵은 진실들을 발견한다. 진리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지칭하기에는 조금 자잘한 것 같은 소박한, 삶의 조그만 진실들이 책 안에 담겨 있다.
작가야 그렇게 주장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은 수녀님들이나 여러 독자들은 매 쪽마다 꽤 여백을 남겨 책 제목이 주는 인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을 「묵상집」같다고들 평한다. 더욱이 작가는 시간이라는 것이 항상 즉각적이고 현세적인 효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단순 하고 느린 「시간 보내기」를 권고한다. 「신지식인」이 첨단의 지성이 되어 버린 오늘날 「그냥」이라는 말은 목적이 없고 무능하며 하릴 없는 나태의 의미를 띠지만 그의 책에서 이 말은 「마음의 빈자리」가 되어 우리가 숨을 쉬게 해주는 여백이 된다. 하지만 이런 빈 마음은 삶에 대한 희망 이나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어찌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는 닮은 나무는 있지만 똑같은 나무는 한 그루도 없습니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 모든 사랑은 하나입니다. 특별합니다』(애너벨리 中에서) 『희망, 그래요, 그건 가난한 자의 양식입니다. 희망이란 크고 엄청난 것들이 아닙니다』(희망에 사는 자는 음악이 없어도 춤춘다 中에서).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들이다. 일부러 단행본으로 펴내기 위해 쓴 글들이 아니며 약 5년 동안 그때 그때 써 둔 자유로운 형식의 단상들을 모은 것이다. 원고를 출판사로 넘기고 작가 자신은 일체 선정과 편집 과정에서 눈을 뗐다. 그런 만큼 이 책은 가감(加減)이나 가리고 꿍치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면을 드러낸다.
작가로서 더욱 충실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강단을 떠나기로 한 한씨는 곧 순교자들의 성지를 찾아 다니며 그들의 신앙을 탐색한 순례기를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는다. 월간 생활성서에 연재되어온 것들을 한데 엮은 것인데 책이 나옴과 동시에 순교자들의 삶에 대한 강연도 마련할 계획이다. 작가의 이 순례기는 또 다른 작업의 전초전에 해당 한다. 한국 천주교회사를 주제로, 특히 신앙이 죽음의 이유가 되었던 신앙인들의 굳건한 믿음이 도무지 어디에 기인하는지가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 될 것 으로 생각된다.
한씨는 그 첫권이 최양업 신부나 이승훈이 될 것으로 가늠하고 있다. 『서양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조선의 민중들을 사로 잡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목숨을 바치 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그 답은 곧 한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 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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