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민족의식이 만나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서구에서 들어온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우리들에게 있어 이 질문은 결코 쉽지않은 물음이다. 교회 내에서 신앙의 토착화와 관련해 다양한 연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신앙과 민족의식의 조화' 를 실천한 인물로서 안중근의 면모와 그의 의거를 신학적으로 고찰한 책이 출간됐다. 평신도 신학자 황종렬씨가 펴낸 '신앙과 민족의식이 만날 때' (분도출판사)는 안중근이 자신의 민족애를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어떻게 통합시켜 갔는지를 분석하고 있는 책. 특히 이 책은 안중근 자서전과 동양평화론 등의 자필원고, 신문기록과 공판기록 등 그동안 역사와 사회학계에서 축적돼 온 성과들을 토대로 그의 저격 행위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새롭게 펴고 있다.
그는 머리말에서 "신앙이 신앙에 갇힌 채 민족의 생명을 외면해서는 결코 바른 신앙인일 수 없고 민족의식이 민족의식에 갇힌 채 생명의 질서를 외면해서는 결코 바른 민족의식일 수 없다"고 밝히며 신앙과 민족의식은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공통된 언어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이 책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의전(義戰)이론에 입각해 안중근의 저격에 관한 역사적 배경과 안중근이 제시하는 이토 저격 이유, 이토 저격비판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사상의 통합을 뒷받침해 준 핵심사상으로 피력 하고 있는 천명관(天命)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안중근은 '중용' 과 '논어' 등에 언급돼 있듯 지극히 동아시아적 개념인 천명(天命)을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과 결부시켰으며 자신의 의병활동의 당위성을 천명관으로 설명했다. 그는 "하느님과 사람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불의한 식민지배에 항거하는 것이 곧 하느님의 뜻, 하늘의 뜻-천명에 따르는 일"이라고 믿었다. 이는 안중근에게 깔린 토착화 신앙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저자는 이러한 안중근의 면모를 동양사상과 신학적 입장에서 고찰하며 그리스도교 신앙과 민족정신의 조화를 이뤄낸 신앙인의 모습을 조명해 내고 있다. 또한 안중근의 삶과 죽음 안에서 비춰지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신앙과 민족의식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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