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자서 이집트를 여행하기로 계획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인 선생 수녀들은 겁을 주며 말했다.
이집트가 얼마나 거칠고 과격한 곳인줄 알아요? 도대체 이집트엔 왜 가려는 거지요?
내 대답은 간단했다. 『성서의 땅이니까요』 그러자 교장 수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는데다가 선생 수녀들의 위협(?)까지 받고 내심으로 잔뜩 겁을 집어먹은 내게 한 스태프가 선한 눈빛으로 조용히 말했다. 『걱정말아요. 이집트 여인들은 모두 당신처럼 베일을 쓰고 있으니까. 그곳 사람들은 아마 당신도 이집트 사람이려니 생각할거예요』 격려의 뜻이 담긴 그의 유머를 들으니 두려움이 반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세계 몇대의 불가사의의 하나라더니 과연 빈말은 아니었구나 할 정도로 정말 놀라움과 경외심이 저절로 솟구치는 매혹의 땅. 사람들은 이곳을 「문명의 발상지」라 하던가. 굽이 굽이 나일강 줄기를 따라 곳곳에 남겨진 유적들에서 지금으로부터 3천여년전, 그 땅에서 숨쉬고 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마침내 숨을 거두어 영원히 그분의 품으로 돌아갔던 성서의 선인(先人)들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출애굽기 1장의 등장 인물들은 「하느님은 강하시다」 혹은 「하느님이 싸워주신다」는 뜻의 히브리어 「이스라엘」을 별칭으로 받은 사람, 사람은 물론 하느님과도 겨루었다는 투쟁의 인간 야곱의 후예들이다. 그들 스스로는 이스라엘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국인들로부터는 천민, 히브리(합비루)라 불리며 업신여김을 받던 떠돌이 부랑민들이었다.
공동번역 성서가 채택하고 있는 「출애굽기」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시비가 없지 않다. 그래서 구약성서 새 번역에서는 그동안 익숙해 있던 「출애굽기」란 이름 대신 그리스어 성서의 제목인 「엑소도스」의 원뜻에 충실하고자 「탈출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어 엑소도스를 우리말로 직역한다면 「~의 길로부터」쯤이 될 것이다. 노예의 길로부터 자유의 길로의 떠남이라 할까. 길 떠남에는 언제나 매력이 있다. 더구나 압제로부터 참 자유를 향해 떠나는 해방의 길 떠남이라면 얼마나 가슴벅찬 기쁨일까. 하지만 우리 앞에는 아직 길을 떠나기에 앞서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단계가 남아 있다.
우리는 우선 1~5절에서 이 문명세계를 향해 밀려드는 70여명의 부랑민을 만나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에게 낯익은 열두지파의 이름들이 열거된다. 이 열두지파는 전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각 지파의 이름은 바뀌어도 열둘이라는 숫자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열둘이라는 숫자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여기셨기에,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열둘」을 따로 뽑지 않으셨던가.
7월은 하느님으로부터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을 받았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상기시킨다. 이제 후손이 모래알처럼 불어나리라던 약속이 아마도 이루어진 모양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온 땅에 가득 찰만큼 무섭게 불어났다니. 8~12절의 극적인 이야기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야휘스트(J) 기자의 기록인데,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들이 파라오의 곡식을 저장해 둘 도성 비돔과 라므세스(람세스)를 건설하는 강제노역에 징집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도시는 군사들의 양식을 비축할 도시로 람세스 2세때 건설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때 우리 독서계에 이집트 열풍을 일으킨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의 주인공이 바로 이 도성을 세운 인물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람세스와 네페르타리는 영화 「십계」에도 모세와 함께 상대역으로 나오는데, 두 작품에서 너무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조금은 당혹스러웠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소설은 당시의 사람들과 상황을 참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집트를 여행한 이라면 이 소설의 주인공이나 배경 설정에 상당한 공감을 느꼈으리라.
하느님에 대한 경외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 엘로히스트(E) 기자의 기록인 15~22절에서 우리는 매우 매력적인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 눈에 보이는 절대 권력의 상징 파라오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더 두려워한 참으로 용감한 히브리 여인들 시브라와 부아가 그들이다.
이 여인들은 이름의 뜻 그대로 참으로 좥아름답고 찬란한좦 이들이다. 하느님을 믿는 참 신앙인이라면 불의(不義)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궁극의 진리이자 아름다움이자 선이신 하느님 앞에 선 인간으로 그분을 경외하리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는 비굴해지지만 하느님을 믿는 이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다. 엑소도스, ~로부터의 떠남은 바로 이런 무의미한 두려움에서의 떠남이요, 해방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호부터 「성서말씀나누기」는 까리따스수녀회 송향숙 수녀(생활성서사 사장)님께서 집필해주십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애독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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